<안수길의 시국단상>

▲ 안 수 길 동양일보 논설위원·소설가

위기는 엄중… 대책은 난항중첩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지 않다

 

다모클레스와 케네디의 교훈

미 35대 대통령 J.F 케네디는 전세계에 산재된 핵무기를 가리켜 ‘인류에게는 다모클래스의 칼’이라고 했다. 뉴프런티어(신개척정신)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 된 그는 전임 아이젠하워와 달리 적극적 지도력을 발휘, 쿠바에 배치된 소련유도탄기지 철수에 성공했다.

그 성공요인은 소련과의 전쟁위험에도 불구하고 쿠바 해안봉쇄를 단행, 고립작전을 전개한 것이었고, 그 배경은 자국의 강력한 방위력 확보와 소련을 압도할만한 핵전쟁 능력이었다. 스스로 ‘다모클레스의 칼’이라고 설파한 핵 위력을 유감없이 활용한 셈이다. ‘전쟁 준비는 평화를 지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라는 조오지 워싱턴의 말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다모클레스의 칼’은 위기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리스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사라쿠사의 왕은 항상 충성스러우면서도 왕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에게 하루만 왕좌에 앉아보라고 했다.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 왕좌에 앉은 다모클레스는 황홀했다. 그러나 문득 머리 위를 쳐다 본 그는 기겁을 했다. 가느다란 머리키락에 매달린 예리한 칼끝이 자신의 머리꼭지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수성찬은 보이지도 않고 칼끝만 머리 속에 가득 찼다. 그토록 간절하던 왕좌의 부러움이 공포로 변한 건 물론 그 후의 시간은 지옥문 앞에 선,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신화 속의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위험과 공포에 직면한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 심리와 행동 양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막연한 선망 뿐 주변과 전후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채 위기를 맞아 혼비백산 한 다모클레스, 정확한 상황파악과 준비된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케네디. 신화와 실화의 차이가 있지만,우리가 현실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는 데에 교훈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국민들의 상황인식, 이대로 좋은가?

북한이 사거리 9000㎞를 넘어 미국 본토공략이 가능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고 장담하면서 화성-14호 ICBM을 시험발사했다. 그것도 북핵문제를 두고 한미 정상이 회담을 마치고 돌아서는 그 시각에. 그리고 미사일 발사성공 축제를 거하게 치렀단다. 발사현장을 지켜보고 파안대소하며 ‘성공 일꾼들’을 껴안고 격려하던 김정은은 이제 더 강력한 핵무장을 독려하며 개발비 마련을 위해 ‘인민’을 쥐어짜고 외화벌이 ‘일꾼’들을 채근할 것이다.

이미 개발 된 핵무기 수준만으로도 휴전선 이남이나 동남아 침공을 넘어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공략을 장담할 만큼 위협적이란다. 핵폭탄의 소형화 완료 직전까지 도달해 있는가 하면 운반할 미사일 개발에도 성공, 사거리에 따라 10여종 이상 종류별로 수십 기 내지 수백 기를 확보하고 있단다. 미사일의 다종화 장거리화까지 성공단계에 이른 상태라니 수시로 도발과 생떼를 겪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바로 가공할 위기상황이 아닌가? 저들의 말로는 그것들이 남한공격용이 아니라 대미전 대비용이라지만 그걸 믿는 이가 있다면 왕좌의 황홀함에 취해 머리 위 칼의 존재를 잠시 잊었던 다모클레스의 착각과 다름없는 일이다.

북핵. 그건 분명, 우리 머리꼭지 위의 칼이다. 아니 그보다 수백, 수천 배의 위기상황이다. 저들이 수없이 되뇌던 ‘서울 불바다’ 위협은 이제 ‘워싱턴 불바다’로 진화 된지 오래다. 언제 ‘남한 땅 불바다’ 협박이 나올지 모른다. 이런 상황인데 우리 국민들의 상황인식은 어떤가?

북한이 화성-14형 미사일을 발사하던 지난 7월 4일, 그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를 시청하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안보위기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몇 %나 됐을까?

북의 미사일 발사 이튿날 서울 강남의 모 ‘글로벌 스토어’ 앞에는 폭염주의보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단다. 수입명품을 사기 위해서 이틀 전부터 노숙 대비용 텐트까지 세우고 있었단다. 주식시장은 잠시 멈칫했다 원상회복, 원-달러 환율은 0.1원 하락에서 정지, 광화문광장의 ‘내 몫 챙기기’ 시위대의 목청도 그대로, 유원지 인파도 평상을 유지하고, 비상용품 사재기 현상도 없고..... 참으로 태평한 일상이 유지됐단다.

좋게 보면 침착한 국민성의 발로이고, 북의 협박, 도발이 빈번하고 장기화 되다 보니 내성(耐性)이 생긴 까닭인 듯도 싶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리 좋게만 여겨지지 않는다.

북의 미사일, 그것이 가진 가공할 파괴력, 그것을 보유한 북의 지도자 김정은의 야욕과 자질, 그를 견제할 어떤 수단도 갖추지 못한 북의 체제, 국제적인 다양한 제재도 약발이 안 서는 그런 요인들이 몰고 올 상황에 대한 인식, 예측과 대비에 우리 모두가 무심하고 무책임하고 그래서 무지한 탓이 아닌가? 분명 가공할만한 위기, 폭탄 한 개에 수십만 혹은 수백만이 목숨을 잃고 삶터가 초토화 될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태평세월을 구가한다면, 그건 머리꼭지 위의 칼끝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진수성찬에 만족하여 고복격양(鼓腹擊攘:손으로 배와 땅을 두드리며 태평을 노래함)하는 것 아닌가?

 

‘따콩총’의 공포와 ‘핵공포’는 다르다.

1970년 전후 북한이 전력(戰力)증강을 위해 전력(全力)을 기울였던 4대 군사노선은 6.25 남침 패전후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남침재개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전인민 무장화, 전군 간부화, 전장비 현대화, 전국토 요새화. 38선 이남 전 지역점령을 눈앞에 두고 패퇴했던 김일성이 통분을 삭이기 위해 절치부심, 필승대책을 세웠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 북의 전략은 과거와 같은 재래식 전쟁을 전제로 한 게 아니다. 6.25 남침 당시 인민군의 어깨에 걸린 소위 ‘따콩총’이라는 구식장총이나 따발총이 피난 못 간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쟁=인민군=따콩총=총살=공포. 이런 등식은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대포 탱크 폭격기 등 살상력이 큰 무기들은 민간을 대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총소리가 ‘따콩’하거니 ‘따따따’ 한대서 이름조차 그렇게 불리던 따콩총이나 따발총은 공포의 첫째 대상이 아니다. 전쟁의 양상이 바뀐 때문이다.

전쟁의 양상을 바꿔 놓은 현대식 무기는 전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무한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정보전, 전자전, 세균전, 화학전, 핵전. 과학의 힘을 빌어 발달된 무기는 인류의 공포를 무한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단일국가 대 단일국가의 대결로 끝나지 않고, 동맹국과 또 다른 동맹국 간의 전쟁으로 확산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핵폭탄 하나로 수십만의 인명, 광범위한 땅덩어리, 그 위에 있던 엄청난 시설과 자원, 생명 소생력까지 동시에 소멸, 초토화 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전방과 후방, 피난 여부에 관계없이 군인과 민간인 구별없이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 재래식 전쟁을 전제로 한 4대 군사노선을 폐기한 북은 이런 현대전에 대비한 무기들을 모두 갖췄다. 여타의 무기는 물론 국운을 걸고 핵폭탄에 미사일 개발까지 성공했으니 ‘핵보유국’주장을 쉽게 철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핵저지를 위한 6자회담이 구실을 잃은 지는 오래다. 지금은 중국 러시아가 손을 잡고 놓아두면 제 풀에 쓰러질 수도 있는 북한을 말치레로만 ‘제재’하면서 감싸고 있고, 한미일 3국이 북핵저지 압박에 손발을 맞추고 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거침없이 진전돼 왔다. 우리 정부는 정권마다 나름대로의 방침을 세우고 갖가지 혜택을 베풀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시도해 왔지만, 북은 항구여일 받을 것만 받고 역시 ‘나의 길을 가련다’는 고집일관이다. 배반자를 참회시킨다는 인의(仁義)도, 살인을 막는다는 인내(忍耐)도 한계에 도달한 시점이다. 인(仁)도 인(忍)도 무용지물이었다. 문재인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오르기 전 ‘현재로선 뚜렷한 답이 없다’는 뜻의 고충을 털어 놓았었지만 그래도 대화 우선의지는 변함이 없다.

한미 정상회담이나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관련국 정상들과의 별도회담에서도 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에 협조를 요청하고 한국주도의 대화 재개방침을 거론했다. 그 발언의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성과 도출에 기대가 안 가는 것은 김정은의 사고 자체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북한제재 요구엔 ‘립서비스’로 대치하고 오히려 김정은의 방패역할을 마다않는 중·러의 이중행태 때문에 유엔 안보리의 북핵 규탄선언문 채택도 무산됐다. 럭비공처럼 튀는 방향을 알 수 없는 트럼프의 분노(?)가 어떤 후속대책을 내 놓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효력 역시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고, ’핵보유국‘인정을 고집하고 그 뒤에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는 김정은의 야욕 또한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민 단합, 일치된 목소리 내자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참상은 6.25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일상은 만사태평 일색이다. 국민들은 저마다 고복격양이고, 정치인들은 그들대로 ‘국해(國害)?’를 위해 분주한 것 같다. ‘북미사일발사 규탄’은 커녕 시급한 추경예산안 조차 대통령 아들 취업비리조작과 여당대표의 막말 후유증으로 몸살 중이고, 핵이나 군사전문가 외교전문가 누구도 언론이 거부하는지 아니면 관의 함구령이 내렸는지, 북핵에 대한 독자적 대처방안을 논하는 이가 없다. 한미 FTA 재협상을 논하는 판에 한미 핵협정의 재협상 제의는 왜 못 하는가? 6자회담 관련국이 북핵폐기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핵개발을 하겠다는 선언은 왜 안 하는가?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에도 북핵폐기 선보장을 왜 요구하지 못하는가? 사안마다 무불간섭으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각 노조가 미사일 도발에는 어째서 함구하고 있는가? 설사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주장이나 선언이라도 관련국들의 관심촉구나 북측의 오만에 경종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우리 군이 보유한 미사일은 4종, 북측과는 비교도 안 되는 처지다. 비록 북한 어느 지역이거나 목표지점을 정확히 타격할 성능을 갖췄다지만 문외한의 추측으로도 현재 북한이 보유한 공격무기와의 맞대결엔 불리한 상황이다. 게다가 북 미사일 방어용 사드배치는 미군만을 보호하는 것일 뿐 우리에겐 전자파 피해나 안기는 것이라고 반대하는 국민이 있고, 중국은 치사한 보복을 자행하고 있다. 증설을 한대도 안심이 안 될 처지에 기왕에 설치확정된 것 마저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는 현 정부가 절차를 빙자해 스스로 장애를 만든 면도 없지 않다. 아무리 집권 전의 선거공약이었다 하더라도 상황인식에 하자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안보에는 여야나 집권 여부에 따라 다를 수 없는 일이다.

위기는 갈수록 엄중해지고, 대책은 갈수록 난항중첩이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물론 한계가 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국민도 전쟁승리에 기여하는 길은 있다. 우리에겐 그런 경험이 있다. 6.25 전란을 겪고, IMF 환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배웠다. 올바른 상황 인식. 단합된 의지, 일치된 행동. 그 본보기를 세계에 보여 준 것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였다. ‘핵개발 기금’ 또는 ‘미사일 개발기금’ 모으기 운동을 못 할 이유가 없다. 국민복지기금을 최대한 축소 절약하고 군장비 증강에 투입하자는 운동을 못할 까닭도 없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자’는 우리의 결의에 세계가 공감할 것이고 망상에 사로잡힌 김정은에게 경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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