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서원구 건설교통과 주무관 전재영

(동양일보) 2016년 10월 어느 날 해 질 무렵, 하와이의 어느 산책길, Fort DeRussy Boardwalk, Honolulu, HI 96815. 눈앞에 보이는 건 송아지만 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서핑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달려가는 사람, 해변

에 담요를 깔고 누워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책길을 따라 설치된 횃불이 바닷바람에 흔들거리며 불타고, 그 순간 고개를 돌려 보니 장발의 한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며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르고 그 남자 주변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고 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사람들이 어찌 이렇게 여유로워 보일까?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맨날 휴양 오는 사람들일까? 고민도 없이 마냥 즐겁고 편하게 사는 사람들일까? 혹시 하와이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라고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바쁘게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유 없이 쫓기듯 살아온 듯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신속한 처리를 위해 조바심을 냈었고 업무 중에도 하루 종일 거의 쉼 없이 일한 적도 있었으며 퇴근 후에도 오늘 하지 못한 일을 떠올리며 내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도 했었다. ‘신속’이라는 말, ‘빠르다’라는 단어의 뜻, 과연 이 단어가 왜 그렇게 나를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왜, 뭘 얻으려고, 뭘 원하는지도 고민해보지 않은 채 그저 쫓기듯 살아온 듯하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내쫓기듯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의 사정도 있을 것이고 성격상 또는 업무상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과연 평생 쫓기듯 산다면, 즉, 여유 없이 산다면 삶이 어떻게 될까, 먼 훗날 내가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한 할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난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바로 일을 시작했고 청춘도 즐기지 못하고 결혼해 자녀를 낳아 키워왔으며 더 부유해지려고 밤낮 그리고 주말을 가리지 않으며 쉼 없이 일을 해 결국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듯하다. 자녀는 잘 컸지만 자녀와의 추억이 없고 놀러 가고 싶은 곳은 많으나 이젠 어딜 가려 해도 몸이 안 따라주니 서글프다.” 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그때(순간순간) 좀 여유 있게 살 걸”이었다. ‘여유 있게’라는 말, 이 말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태에서 느끼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바로 마음의 여유인 듯싶다.
또 시중에 나온 책을 보면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런지 몰라도 많이 다뤄지는 주제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가봐야 할 곳, 먹어야할 음식, 후회하지 않는 삶’ 등 후회하지 않으려는 심리에 대한 도서가 많다. 결국 아무리 바빠도 잠깐의 여유를 내서 추억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방법인 듯하다.
이제까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쫓기며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마음에 여유를 가질 것이다. 퇴근 후 직장 일을 떠올리기보다는 아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며, 내일 해야 할 일을 고민하기보다는 오늘 있었던 보람된 일을 떠올릴 것이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길 것이다. 하와이에서 봤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과 모습을 떠올리며 여유롭게 사는 법을 익힌다면 앞으로의 삶은 지난 시간 내가 살아왔던 삶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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