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 할머니는 나무를 싫어하셨다. 특히 집안에서 나무가 크는 것을 참지 못하셨다. 창문을 가리는 옥향나무의 가지를 잘라내는 것은 나름 조경을 생각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산목련이 가지를 벌어 푸른 잎 사이로 청초한 꽃을 피운 것을 톱으로 잘라 볼품없이 만들어 놓고, 잔디밭 가장자리에 심은 회향목의 속가지들을 똑똑 잘라내 속이 휑하니 보이게 만들어 놓는 것은 나무에 대해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언짢아한 것은 늘 나무들 때문이었다. 마당에 잔디를 심고 이런저런 나무들을 사다가 심어 놓으면, 할머니는 어느새 살금살금 잔가지들을 자르다가 종당엔 굵은 밑기둥까지 톱으로 잘라 나무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엔 그늘이 없었다.

할머니는 집안에 큰 나무가 있으면 나무들이 지기를 빼앗아가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으셨다. 나무 때문에 온갖 벌레들이 모여들고, 집안에 그늘이 생겨 음습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할머니 때문일까. 도심의 가로수들이 기둥만 남겨놓고 싹뚝 잘린 것이나 큰 나무가 없어 햇볕이 가득 든 공원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해 여름, 영국에 갔을 때 도심의 키 큰 나무들을 보고 놀랐다. 가로수만이 아니었다. 집안의 나무들도 지붕을 가릴 정도로 키가 컸고, 공원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해 하늘이 보이지 않고 컴컴했다. 공원은 숲을 이뤄 한여름임에도 서늘했고, 바람이 지나는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울창한 나무들에 익숙해 있다가 돌아온 뒤 우리나라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잉 가지치기를 한 가로수들은 초라했고, 보도블록을 깐 공원엔 그늘과 햇볕이 공존해 숲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를 보는 눈이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조경의 이론은 모르지만 우리도 도심의 나무들이 좀더 자유롭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안되는 것일까.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나무가 커지면 나쁜 일이 생길까봐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관련부서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지탄을 받는 것일까.

다행히 요즘 들어 도시의 나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를 잡기 위한 화두로 도시숲(Urban forest)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숲은 도시인구에 의해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공간 내의 숲, 공원녹지 등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가로수나 공원의 나무들이 모두 포함된다.

세계 여러나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숲 운동을 펼쳐왔다.

연간 약 2천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 센트럴 파크는 시민들이 관리하고 지킨다. 센트럴 파크 관리 예산 2,000만 달러 중 1,700만 달러가 시민기금이며, 시정부는 순찰 등 기본적인 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공원에 유산을 기부하는 시민도 있고, 억만장자들도 공원관리 자원봉사자로 풀을 깎고 나무를 돌보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빽빽한 나무속에 건물들이 숨어 있는 영국의 밀턴케인스는 교회를 빼고는 모든 상업건물을 6층, 주택은 4층 이하로 건설한다. 1967년 도시 건설 이래 해마다 130만 그루씩 나무를 심어 환경도시임을 자부한다. 독일의 대표적 공업도시 슈투트가르트도 40여 년 동안 ‘숲과 바람길’ 정책을 통해 심각한 대기오염을 극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는 도시면적의 23%가 녹지이며 바람길을 위해 숲 근처의 건물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평행하게 배치시키거나 허물기도 한다.

캐나다 토론토도 새, 곤충, 야생화가 어우러지는 도심 속 자연을 만들고자 생태계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프랑스의 신도시 세르지 퐁투아즈는 주민 1인당 1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 식목조성 기준을 마련하여 도시의 30%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이밖에도 일본 타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호주 시드니, 스위스 체르마트 등도 도시숲 보존을 위해 애쓰는 도시로 유명하다.

도시숲 보존을 위해선 도시의 삼림조성과 관리가 필요하다. 나무의 생태적 건강성도 중요하지만, 땅의 산성화 유기물 부족으로 식물이 자라기 힘든 환경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마스터플랜과 시민들의 자발적 동참이 중요하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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