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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 화관리비와 신랑신부선돌 <이상주>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최근에는 농촌에서도 축제를 하는 마을이 많아졌다. 그 마을의 장점과 특색을 시대변화에 맞게 잘 살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주민의 화합발전과 인구전입을 유도하는 장으로 삼기도 한다.
  축제(祝祭)는 ‘빌 축’ ‘제사지낼 제’ 즉 ‘빌고 제사지내는 행사이다’. 원시시대부터 이런 행사는 있었다. 기본적으로 물질적 풍요와 무병장수, 그리고 자손번창과 부귀영화를 축원했다. 축원을 마친 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시대와 사람은 바뀌지만 그 축제를 하는 목적은 같다. 이런 인간 본연의 원초적 소망을 시행 축원을 했던 자취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충북 괴산군 사리면 화산리 도촌에서 찾아볼 수 있다. 7월 22일 토요일 “도촌해바라기축제‘를 한다. 축제를 하는 목적은 마을주민의 화합단결을 도모하고 생생사업을 추진하여 더욱 부유한 마을을 만들려는 것이다. 아울러 출향인사들이 더욱 많이 귀향할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야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또한 무병장수하고 자손이 번창하는 것도 인간의 기본적 바램이다. 그런데 신이하게도 도촌에는 이를 시행하고 축원했던 유물이 남아있다.
 첫째, 도촌 자무탕 언덕 정상에 홍의묘비(洪義墓碑)가 남아있다. 여기에 ‘장괴산남면화관리’라 새겨져 있다. 즉 “괴산 남면 화관리에 장례지냈다”는 뜻이다. ‘화관’은 ‘벼 화’ ‘집 관’, 글자 뜻 그대로 ‘벼를 보관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정부 양곡 보관창고 건물이 있었다는 뜻이다. 쌀은 1980년도까지도 중요한 식량자원이요 주곡이라 했다. 이 지명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학술적 의미가 있다.
  필자가 2003년에 판독해보았다. 홍의(?~1484)라는 인물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는데 무관직인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오늘날 수도경비사령부 급의 부사령관이다. 이 비석을 건립한 연대와 그의 생몰연대가 비슷하다. 1484년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묘는 홍감사묘, 동네앞들은 홍들이라 전해온다. 묘소 아래 홍감사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등 국가기관에서 발행한 책에 화관 또는 화관(禾館)등으로 기술했다.
 지금 괴산군은 ‘유기농업군’을 표방하고 있다. 이런 농업중시중심적 기반이 괴산에서는 이미 도촌을 중심으로 조성유지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괴산군은 유색(有色)벼 연구에도 우위에 있다. 이 비석은 주곡인 벼 생산을 중시했던 사실을 증명해주는 비석이다. 지금까지 도촌에서는 직접 벼를 재배했지만 이제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벼를 얻을 수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이 홍의비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벼 보관창고’가 있었던 화관이라 명칭을 새겨놓은 한국 유일(唯一)의 비이다.  따라서 홍의비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더욱 귀중하게 보존하고 홍보해야한다. 그러면 한국 농업역사와 벼 보관시설제도를 연구하는 학자와 관광객이 몰려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촌은 생생사업과 경제부흥을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다.
 서예가 신상철(申尙澈1957~ )선생은 “구양순(歐陽詢 557~641)풍의 글씨며, 무(武)와 의(義)의 ‘창 과(戈)’의 운필에서 무인(武人)의 필의를 느낄 수 있다.”고  이 비의 서예미학적 가치를 평가했다.
  둘째, 신랑신부선돌이 있다. 현재 괴산군내에서는 도촌에만 있는 유일(唯一)의 부부선돌이다. 먼저 두 사람이 합심협력하여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뜻을 담아 세운 것이다. 다음, 부부가 금실좋게 자녀를 많이 낳아 마을과 나라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빌었다. 그 다음, 이 선돌을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선돌이 영통력을 내려주어 도촌마을은 잘 살고 있으며 후손이 번창한 가문이 많다.
  경제력과 인구는 국력의 상징이다. 6,25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후퇴했다. 지금 농촌은 인구감소가 더욱 심각해 지방의 행정기관마다 비상이다. 도촌해바라기축제도 출향인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고 귀향을 촉구 유도하는 마음도 담았다..
  화관이 있던 도촌일대의 주민들은 이밥에 고기국을 먹었을 것이다. 역사는 동일양상이 반복된다. 우리는 도촌의 홍의비와 신랑신부선돌을 통해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했던 삶의 모습을 확인했다. 축제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지금의 축제도 경제적 풍요와 인구증가를 구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 이 두 유물에 담긴 내용을 온고지신하면 황금창고가 넘치고 고루거각이 즐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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