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시대를 선언했다. 지금의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광화문 집무실 의지는 대선 공약으로 이미 밝혔고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분명히 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이렇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 ‘새로 짓지 않는다’, ‘청와대를 비운다’로 요약된다.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방안은 청와대를 비워 시민공간으로 돌려주고 대신 집무실은 광화문 정부청사를 쓰고 관저는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외교부 청사, 서울지방경찰청사, 국립고궁박물관도 대상은 되지만 다소의 교통불편이 따르더라도 정부서울청사 본관이 가장 유력하다는 소식이다.
문 대통령이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러면서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만큼 집무실 이전 의지는 확고한 것 같다. 다만 청와대가 정부청사로 옮기려면 법 개정을 통해 행자부와 여가부 등 기존 입주 부처들이 이전해야 하고 경호시설 설치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해 2년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시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 할 수 있다. 단지 문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의 오찬회동에서 개헌을 통해 행정수도가 세종시로 이전되면 광화문 집무실은 필요없다고 말해 변수는 없지 않다.
행정수도의 세종시 이전과 관계없이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에 대해 걱정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2012년 지방선거때 당시 이시종 충북지사후보는 도지사 관사를 없애고 문화공간으로써 도민 품에 돌려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당선되자 약속을 지켰다. 지금은 충북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공연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지사는 공약을 충실히 이행한 지사가 됐다. 그런데 공약이행으로 관사를 잃어버린 지사는 지금 도비로 아파트를 임차해 살고 있다.
지사쯤 되면 낮 시간에만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게 아니다. 때로는 퇴근후 사회 지도층이나 관련 공무원들과 현안을 숙의하고 해결책 모색을 위해선 그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여기서도 업무가 연장되기 때문이다. 지사는 개인이 아니고 도민을 대표하는 신분이기 때문에 사생활 보장을 하면서 공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즉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 아파트에서도 업무는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여러 가지로 부자연스럽고 서로가 불편하다. 또 지사관사를 없애 문화공간을 제공할만큼 청주의 문화시설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지사 공관쯤은 하나 있어도 되는 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지사 공관도 이럴진대 청와대는 어떻겠는가.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이 광화문 정부청사든, 어느 건물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소통의 문을 넓히겠다는 데는 충분히 공감한다.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러면서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 뜻을 우리는 존중한다. 정말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퇴근길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전혀 연출되지 않은, 불특정 시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광경을 본다면 국민들은 ‘이게 나라다’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할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꼭 그런 날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런데 말이다.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요인이다. 본인이 버스를 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탈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권위주의를 탈피하는 건 좋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권위까지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경호가 완벽한 청와대를 나와 서울 한 복판 건물에서 근무한다면 불편해 하고 불안해 하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청와대 집무실에서 광화문 광장까지의 거리는 1.8㎞, 정부청사에서 광장까지는 100m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지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한 소통이지 소통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경호를 부드럽게 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머무를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광화문 시대가 오히려 시민들의 광화문 광장 출입을 제한할 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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