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마을 어귀 양달 진 곳에 세 두락의 밭이 있다. 양 노인(양한정)의 밭이다. 양 노인이 스물일곱 적에 사들였다. 그때 마을의 동갑내기 홍선이가 귀띔을 해주었다. 홍선이 할아버진 마을 한복판을 차지한 유일한 기와집의 마름(땅주인을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을 살았었다. 그러니까 홍선이 할아버진 그 기와집의 토지를 훤히 꿰뚫고 있었고, 마을사람들 특히 소작인들에겐 정작 기와집 마님보다도 더 우대를 받고 있었다. 그 마름의 세도 때문이다. 말이 있다. ‘우는 애와 마름에게는 못 당한다.’ 는. 그런 홍선이 할아버지가 아들인 홍선이 아버지에게, 기와집 마님이 그 세 두락의 양달 밭을 내놓았다고 말하는 걸 홍선이가 들었고 그래서 홍선이가 이 소식을 동갑내기 한정이에게 득달같이 달려와 전달한 것이다. “야, 그거 니가 사라. 그 땅 나온 거 아직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빨리 서둘러. 너도 알잖어 그 땅?” “알제 그치만 그 큰 땅을 살 돈이 어딨어.” 세 두락이면 서 마지기다. ‘두락’이나 ‘마지기’나 다 같이 논밭의 넓이의 단위를 말하는데, 두락(斗落)은 한자어로서, 한자어의 뜻처럼 ‘한 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넓이의 땅’이라는 말이고, 마지기는 고유어로서, ‘말 짓기’에서 온 말로 ‘한 말의 씨앗으로 지을 만한 넓이의 땅’이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흔히 밭은 두락으로 논은 마지기로 칭하는데, 밭 한 두락은 300평, 논 한 마지는 200평으로 셈한다.(밭은 100∼200여 평, 논은 150∼250여 평 치는 데도 있다.) 그러니 세 두락의 밭이라면 900평이다. 그야말로 한정이에게는 바다같이 여겨지는 땅이다. “너 여태까지 죽어라고 내 집 남의 집 일해 모아놓은 것 있잖여?” “그것 가지고 택도 없어 야.” “그려? 그러면 모자라는 건 물 건너 장리쌀 놓는 집에 가서 얻자 내가 보를 스면 줄게야.” 이렇게 홍선이의 고마운 울력으로 마련한 밭이다.
 이후 한정인 젊음을 바탕하고 남의 집 머슴 살던 때를 상기하면서 죽자 사자 일을 해 6년  여에 걸쳐 그 빚을 갚고 인근의 논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사들여 이에서 나오는 농작물 팔아 아들 둘 딸 하나를 공부시켰다. 내가 못 배운 한을 자식들에게 모두 쏟아 부었지만 자신에게는 한계가 있어 아들 둘은 고등학교(공고, 상고)를 마쳐주고, 딸 하나는 여상을 마쳐주었다. 그 두 아들 중 맏이는 아랫녘 기업체의 배관공으로 있고. 둘째는 안산에서 물류회사에 다니고. 딸은 같은 농협직원과 눈이 맞아 그리로 출가시켰다. 그런데 맏이와 둘째가 돈 벌어 방세 내고 제 부모 살림 보태주느라 쩔쩔매는 것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내자와 상의했다. “여보, 논 있는 것들 팔아 애들 아파트 마련하는 데 보태주자구.” “그래유, 인제 달랑 우리 두 식구 즈이들이 보태주는 것 하구 밭농사 짓는 것만으로두 충분할 테니 그렇게 합시다.”
 그래서 인제 농지라곤 달랑 그 양달 밭 하나가 되었다. 이걸 마련해주느라 앞장선 홍선인 예순 셋에 간암으로 앞서 세상을 떴다. 그렇더라도 이건 그대로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게 어떤 밭인가. 남들이 부러워하고 탐냈던 밭이다. 여기서 특수작물해서 애들 공부시키고 가용쓰던 것 아닌가. 한정 씬 이걸 붙들고 동네사람들이 ‘양 노인’이라고 부르게 된 70대를 살았다. 그리고 80줄로 들어섰을 때 내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영감, 우리 인제 양달 밭 남 줍시다. 인제 힘이 부쳐 못하겠어유. 거기서 나오는 도지 쪼끔 보태면 우리 두 식구 그냥저냥 살 것 아니우!” 하지만 웬 걸, 붙여먹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양 노인이 힘들게 찾아가 종용할라치면, “요새 그거 아니래두 묵어 나자빠진 밭들 많어유.” 하거나, “요샌 그냥 져먹으래두 안 해요.” 하든가, “그냥 져먹는 밭두 내놀려는 판인데 아무리 쪼끔이래두 도지를 달래면….” 하고 끝을 흐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거 붙여먹으믄 얼마 줄래유?” 하고 푸시시 웃는 이도 있는 거였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겠지만 이 역시 거절하는 뜻이 역력하다. 하여 마지막 셈치고 농사일밖에 모른다는 외딴집 고 서방한테로 갔다. “노인네들이 힘 부치시지유. 어디 한번 그 밭에 가볼까유.” 한다 그래서 데리로 갔더니, “여기 뭘 붙였는데 비닐 덮은 게 아직 그대루 있네.”하고는 시큰둥해 한다. 그래서 두 노인네가 “비닐을 벗겨내믄 할 의향은 있어뵈제?” “그러게요.” 하고 이틀을 둘이 죽어라 하고 비닐을 벗겨내곤 다시 보였다. 그제서야 고 서방은, “그럼 한번 해보지유 뭐. 그 대신 도짓쪼루 아주 쪼끔 생각해 드릴 게유.”한다. 참,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 해도 이 양달 밭 신세가 이렇게 변하다니? 양 노인은 엄연히 펼쳐 보이는 격세지감 앞에서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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