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호 시인

 

황혼에 집 나서네 먼 길 떠나네
보잘것없네 지난날의 모든 것 모았어도
작은 보자기 하나도 채우지 못하네

이제사 알 듯하네
지나온 길 결코 짧지 않았네
무성한 숲 그늘 축복의 계절마다
황홀함에 취하여 세월은 가고

나를 위해 밤잠 설치던 몇 사람
그 거룩함으로 예까지 이르렀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네
쓸쓸함이 얼마나 빛나는 유업이었는지를
먼 길 떠나며 비로소 나를 보네
어둠은 큰 거울이었네

△시집 ‘다시 바람의 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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