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충북학연구소장)

(김규원 충북학연구소장) 택시나 편의점 등의 서비스에 대해서 중, 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택시기사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분들의 반말을 하는 것이 가장 불쾌하다고 했다.

한 전문가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은 원나라 황제 성종(成宗)에게 원나라와 다른 고려의 노비제도를 바꿀 수 없다는 표문(表文)을 올렸다고 한다. 즉 고려 태조 왕건의 유훈을 근거로 부모 한쪽이 노비면 그 자손은 영원히 노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원나라처럼 부모 한쪽이 양민이면 자손이 양민으로 될 수 있도록 고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왕건은 노비는 근본이라는 것(아마도 혈통이나 지적 능력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에서 양민과 차이가 나기에 이들이 양민이 되면 나라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걱정을 해서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에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종모법(從母法)으로 되면서 계속 지속이 된다. 노비는 조선 중기의 경우 전체 인구의 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늘어나는 이른바 노비들의 경제적 생산력에 의존하는 노비제 국가로 조선 왕조는 유지된다. 그러니 정부의 권력이 약해진 조선 후기 즈음에는 전체 인구의 7,80퍼센트가 양반임을 주창하면서 호적을 고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내 마음대로 내 노비를 부리는데 너희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지어다 식의 인식은 요즘도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지속됨은 여러 대기업 회장들의 언행은 물론 교육부 고위 관리와 유력대권주자 아들 등등의 개돼지나 들쥐 발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갑질의 영역을 조금더 확장하면 자신들 만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는 언행들은 물론 자민족 중심적 사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에만 주목하기, 자기 지역 중심(중앙)으로 하면서 타지역을 무시 혹은 비난하기와 같은 행태로 연결된다.

오래 전 군복무중일 때 철책선이 보이는 긴장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10월 초순, 추석을 앞둔 시기인지라 겉보기에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때 마침 갓 전입온 이등병이 있었다. 당시 나는 일, 이등병들에게는 눈길도 안주는, 막강한 왕고참의 지위를 한여름 늘어진 개처럼 즐기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 이등병님께서 어느 날 내무반에서 사소한 실수를 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도 중간관리자층인 상병들의 지적방식이 오수를 즐기던 늙은 개였던 나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보다. 그래서 이들에게 행한 폭력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데 그 때도 아마도 내 안에는 후임병사들은 내 것 내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신분상의 계급을 없음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각종 제한 등을 없애자고 많은 노력들을 공적, 사적 영역에서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내 안의 갑 의식 즉 내가 왕고참 혹은 세상의 주인인데 왜 너희들이...라는 삐뚤어진 생각 때문일 수도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오해와 몰이해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오해는 아주 사소한 착각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타인을 가벼이 여기고 나이는 물론 교육수준이나 경제능력, 외모, 태도, 성별 등등을 기준으로 늘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듯하다. 고등학생들이 택시비를 학생할인해서 내는 것도 아니고 가게에서도 할인받고 사는 것도 아닌데, 더욱이 이들이 다른 집의 귀한 자식들인데 마치 내 아이에게 하듯이 반말 등 하대는 이제 그만하면 어떨까. 많은 경우 어른들은, 상사들은 우리는 내 아이 같아서 혹은 다 잘 되라고, 또는 무심코라는 착각을 기준으로 변명을 한다. 그렇다면 정녕 내 아이, 우리 지역민이, 우리 국민이 이러저런 갑질에 희생되길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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