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배 시인

 

그리움 오래 삭혀온 몸이란 대게 가볍다

스물다섯 개 구멍 뚫린 폐기물
수거차 올 때까지 밖에 내다 놓으니
무슨 덜 태운 미련이 남았다고
태워서 이미 가벼워진 몸에게
갈가는 사내들 담뱃불 쑤셔 박는다

그런 소용 다한 구멍일지라도
내다 버린 재 무게가 버겁다는 것을
양기 허약한 남자들은 안다는 것이다

당신, 한동안 뜨겁게도 살았기 때문
그날그날 버리지 못한 내 게으름을 다독여도
타버린 구멍 속 고독의 바닥은 참 깊었다

그 위 눈 내려 이룬 흰 봉분은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를 닮았다

나른하게 드러누운 살빛 무덤
백악기도 쥐라기도 이젠 가벼워서
영락없는 활공의 각도다

△시집 ‘알약’ 등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