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 김 주 희(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고 이웃집 여인과 끄덕였다. 진짜 모를 때는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고 소소한 실패담을 만담처럼 풀어놓았다.
 공동체를 위해 엄청나게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개인의 일상을 시시하게 여기고 공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믿었을까. 어느 한 때 수놓고, 꽃꽂이 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일들을 경계어린 시선으로 보기도 하면서. 그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투쟁하고 목숨을 걸기도 해야 했다고 배웠으므로. 살림 같은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배울 틈 없이 혼인하고 살림을 났으니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로 어설펐고, 구체적 노동이 필요한일에 추상적 사고를 들이댔다. 누군가 움직여야 식탁에 밥이 들어오고, 식탁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라는 식의 글들을 페미니즘 이론에서 읽어야 왔지만 그동안은 개인적으로 절실하지는 않았고. 이웃집 여인과 나는 그럭저럭 겹치는 대목이 있었다.
 차려주는 걸 아기새처럼 받아만 먹다가 해서 먹어야 하는 일이 시원하게 될 리 없었다. 마음먹고 사는 일을 열심히 익히기로 했는데 모양이 그럴듯해도 간을 맞추는 사소한 일 같은 데서 걸렸다. 어느 때 간장 넣고 어떤 국에 소금 넣는지 사소한 그런 일들. 어쩌다 여럿이 모여 잡채라도 만들게 되면 먹어본 기억에서 들어가는 것들을 떠올리고 다른 이들이 이미 손에 잡고 있는 당면이나 시금치 같은 것들을 뺀 나머지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내야 했다. 재료를 잡은들 어쩔지 요령이 서는 것도 아니어서 양파 따위를 떠올려도 써는 방법부터 서너 차례 검사를 맡아야 하니 낭패스러웠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 것들은 뭘 썰라면 센티미터로 묻는다고 기막혀 하던 시절이고.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능은 뭔가를 배우거나 알았다고 실력이 훌쩍 느는 것도 아니어서 하다보면 재미와 답답증은 함께 났다. 방학이면 요리책을 여러 권 사다가 공부를 하듯 엄청난 시간을 들여 하루에 몇 가지씩 만들면서 원리와 방법을 익히기도 했는데 성취감과 허탈함이 늘 공존했다고 할까, 만드는 데는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먹는 데는 삼십분도 안 걸리는 그런 데서. 그런 사정이니 책임있게 배우기로 작정은 했지만 행주를 비누 묻혀 바닥에 대고 비벼 빠는 걸 당연하듯 몰랐다. 그저 삶고 소독하고 손 안에서 조물거려 멀미가 나도록 헹궈내기만 했다. 제법 살림이 손에 익는다고 여겨지던 무렵 설거지를 마친 손아래 동서가 행주에 세제를 묻혀서 개수대 바닥에 시원스럽게 비벼 빠는 걸 우연히 보았는데 개운하고 야무져 보였다. 그러고 보니 친정 엄마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오래 보아왔으면서 기억은 못했던 것이다. 
 그 간단한 걸 몇 년간 모를 수 있냐고 흉허물 없는 이웃집 여인에게 한탄했더니 자기는 결혼하고 바로 독일로 남편 유학을 따라 갔는데 냄비를 속은 닦아도 겉에 닦는 걸 몰랐다고 한 술 더 떴다. 독일에서 만난 살림 잘하는 대학선배가 설거지를 해주면서 지저분한 냄비 밖까지 반짝이게 닦아주고 가더란다. 그 일로 모든 큰 그릇들도 바깥을 닦아야 하는 걸 알았다고. 그 선배네 놀러가보니 렌지후드에는 기름때가 노랗게 배어 있더라고 한다. 설거지를 해주며 분리해 말끔하게 해주었더니 후드 필터를 떼서 닦는 건지는 몰랐다고 했단다.
 바보 배틀이 따로 없이 이런 어설펐던 얘기들이 줄을 이었다. 다 같이 한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다가 결말은 누구나 다 약한 분야가 있다는 데로 향했다. 다 잘할 수도 없고, 다 못하지도 않는다는 그런, 사람은 그런 존재라는 인간 존재론으로. 우리는 불완전한 피조물이라고, 당연히 완전할 수 없다고.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약한 부분을 좀 봐주며 살아야 한다는 데까지 갔다. 이 여인과는 대체로 이런다. 민망한 이야기조차 순한 삶의 자세로 연결되는 지점이 자주 생겨난다. 바보들의 행진 같지만 뉴스 속의 독한 인간들에 대해 진저리 쳐질 때 어마어마한 위안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실패 이야기를 흉으로 돌리지 않을 멤버가 최우선 필요조건이다. 이야기와 마음의 무장해제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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