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 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청주를 중심으로 충북지역에 쏟아진 물 폭탄을 본 사람들은 물의 무서움을 절감했을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번 폭우가 안주해 있던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 청주는 그동안 자연재해로부터 거의 무탈지대로 인식돼 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지역이 물난리를 겪고, 태풍 피해를 당하고, 폭설 피해를 입어도 용케 잘 피해나간 청주사람들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면서 스스로 안전불감증에 빠져 든 것이다.
37년전인 1980년 보은읍이 다 잠길 정도로 보은지역에 큰 수해가 있었고 그 당시 청주에서도 무심천이 범람위기에 놓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 무심천 범람위기 상황은 이번 폭우때보다 더 심각해 둑이 무너졌거나 범람했으면 그 피해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지금 청주대교 옆에 있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옛 서문대교의 교각이 주저앉은 게 그때의 폭우 탓이었고 그후부터 지금까지 차량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당시 많은 양의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도 장시간에 걸쳤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물 피해를 비켜갈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큰 비가 오지 않아 이번처럼 수해를 걱정할 일이 많지 않았고 그러면서 청주는 안전한 도시로 인식돼 갔다.
그런데 이번에 쏟아진 물 폭탄은 달랐다.  
지난 15~16일 이틀동안 청주에는 302.2㎜, 증평 239㎜, 괴산 183㎜ 등 많은 비가 내렸다. 더욱이 시우량 90㎜는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무시무시한 양이다. 아마 이런 폭우에 아무런 사고없이, 피해없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자연에 대한 불경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동안 자연재해에 대비해 온 저력이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었다는 거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당국에서는 100년 빈도의 자연재해에 대비한 항구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공무원, 군인, 경찰, 시민, 타 지역 주민들의 땀방울로 수해응급복구는 거의 마무리 돼 가고 있다.
수해가 큰 청주시와 괴산군 등의 공무원들은 휴가도 미루고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한 채 시간만 나면 수해현장에 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너나 할 것없이 수해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봉사자들의 얼굴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이깟 더위야” 하며 서툴고 힘들지만 하나라도 더 치우고 나르려는 의지 앞엔 더위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무보트 타고 레펠 하강하는 군인들의 군사작전 뺨치는 수해복구 작업 광경이나 저수지 물속에 뛰어들어 부유물을 건져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믿음직했다. 특히 박신원 37사단장이 한 말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군의 수해복구 작업은 본연의 일이어서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계속 할 것이다”
이같은 수해복구 현장에서의 땀은 희생정신이 바탕이고 바로 그것은 보람으로 이어진다. 봉사자들은 수해현장에서 땀을 뒤집어 쓰고 나면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봉사는 봉사대로 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 뒷맛이 개운치가 않을 때가 있다.
한 예를 들면, 오창에 있는 한 연구기관장인 이 모씨는 지난달 20일 베트남 출장에서 돌아와 짐을 풀기도 전에 청주 미원의 한 수해현장을 직원들과 함께 찾았다. 그의 눈에 비친 처참한 광경은 TV에서 본 것보다 더 황량했다.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 먹고 직원들과 ‘죽어라’ 작업했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퉁퉁거리며 하인 부려먹듯 하는 언행에 속이 상했다. 하지만 오죽하면 그러나 싶어 그냥 속으로 삭였지만 일을 마친 뒤에도 뒷끝이 개운치 않았다. 자신만 이런 느낌을 받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직원들과 얘기하다보니 똑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손놀림이 능란한 직장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면 좋을 것을... 퉁퉁거리며 왜 와 귀찮게 하느냐는 식으로 ‘갑질’을 하니 어이가 없더라”고 했다. 주인이 이 동네 토박이가 아니고 외지에서 와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베풂에 대해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사상 유례없는 물 폭탄을 맞은 수해민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은 같은 국민으로서 당연하다. 그렇다고 피해를 입었다고, 그걸 빌미로 자원봉사자들한테 고마워 하기는 커녕 눈총을 주거나 면전에서 거만을 떠는 것은 그들의 땀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자원봉사자의 숭고한 땀이 오만에 얼룩져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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