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운(충북대학병원 외과 교수)

▲ 최재운(충북대학병원 외과 교수)

어느듯 충북대학병원에 발령받은 지도 30년이 가깝다. 전문의와 전임의를 마치고 처음 발령받은 곳이 이곳 충북대학병원이다. 외과의로서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는 컴퓨터가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것과 같은 혁신적인 변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수술의 변화와 여기에 적응하는 외과의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980년대 초반까지 훌륭한 외과의는 배를 크게 열어 시야를 확실히 확보하는 외과의라고 배웠다. 당시에는 ‘위대한 외과의는 절개창이 크다(Great surgeon, great incision)’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1800년대 후반 현대적 외과 수술이 개발된 이래 지난 100년간 모든 외과의가 공감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수술의 기법을 변화시킨 동력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카메라의 발전과 영상화면의 개발은 배를 절개하지 않고 수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는데, 1986년 시행된 복강경(腹腔鏡) 담낭절제술(쓸개 담석 환자 수술)이 그 첫 예이다. 복강경 수술은 배를 개복하지 않은 채 작은 구멍만 뚫고 카메라를 배 속에 넣은 다음 수술하는 방법이다. 처음 이 수술 방법을 발표하였을 때 많은 원로 외과의들은 이 수술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수술 합병증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 수술은 기존의 수술방법인 개복수술을 피함으로써 환자에게 큰 상처를 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수술 후 회복기간을 단축시키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 수술 방식이 도입된 후 불과 8년 만에 절개하지 않고 복강경으로 담낭(쓸개)을 절제하는 술식이 담낭 담석 수술의 표준으로 인정받아서 세계에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도입되어 대부분의 담낭 절제술이 복강경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개복하고도 힘든 수술인 간절제술, 췌장암 수술, 위암, 대장암 수술 등 거의 모든 수술 분야에서 배를 개복하지 않고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기존의 개복 수술 대부분이 복강경 수술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하여 무려 100년 동안 시행하여 오던 전통적인 수술방법에서 복강경 즉 최소침습수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외과 내부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수술 방식의 변화에 대하여 대응하는 외과의를 4개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군은 개척자군 혹은 선구자군이라고 칭하고 싶다. 배를 개복하지 않고 환자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수술할 수 있는 기법에 대한 장점과 가능성을 확신하고 이러한 수술의 새로운 적용과 기술 개발을 시도한 군이다. 선구자군은 초창기에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외과의가 되었으며 새로운 수술 기법의 선구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나라로 분류하면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가 선구자군으로 분류될 수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간, 췌장 수술 등 외과 수술 기법은 일본이 단연 앞서 있었으며 우리나라 외과의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외과의들도 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2000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외과 의사들의 선구자적 개발 노력으로 이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로 복강경 수술을 배우러 오고 있다.
  둘째 군은 조기 적응군이다. 복강경 수술을 직접 시행하는 용기는 없었지만 항상 수술 방법 등을 연구하고 다른 외과 의사들의 수술을 면밀히 학습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직접 새로운 수술을 개척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지만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선구자군의 수술 방식을 빠르게 도입하고 적용한 외과 의사들이다. 이분들은 안전한 방법을 생각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지만 현재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앞서가는 외과의로서 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셋째 군은 후기 적응군이다. 이분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수술 경험이 많은 원로 외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존의 수술 방법에 익숙하여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가 복강경 수술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자 추세임을 확인하고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늦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기존의 경험과 융합하여 복강경 수술 기법에 적응하였다. 후기 적응군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어쩌면 환자의 안전을 더 많이 생각한 의료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부적응군이다. 이분들은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고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는 군이다. 어쩌면 이분들은 패배자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하고 기존의 방법을 고수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자기의 영역을 잃어버린 외과의사들이다.
   지난 20년간 외과는 100년 이상 지속해오던 수술 기법의 혁신기(革新期)를 맞아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선구자에서 패배자까지 그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제 우리 국가나 민족은 물론이고 대학과 사회도 혁신기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 따라서 선구자로서 대처할지 아니면 조기 적응자로서 빠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혹은 부적응으로 인한 패배자로 떨어질지 다 우리 선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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