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근 <충남운송사업조합 전무>

박상근(충남운송사업조합 전무)

누님 가족의 이민으로 인천공항에서 11시간동안 1만여km를 날아 당도한 샌프란시스코 공항, 캘리포니아 골든게이트를 가로 지르는 1300m의 금문교를 지나 서부 해안도로를 따라 LA 한인타운까지…. 이국체험이 시작됐다. 미 서부에만 80만의 동포가 살고 있으니 거리엔 온통 우리말 간판에 오가는 한국인들이 즐비해 미국 땅이란 실감이 크질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와 LA여행 중에 듣게 된 기분 좋은 소식은, 미국사회가 백남준 아티스트를 훌륭한 한국인으로 극찬했고 그가 죽음을 맞이한 날 컬럼비아대 강의실에서 한 교수가 한국학생을 세워놓고 “자랑스런 한국인에게 모두 박수치자”고 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화제였다.

그러나 911테러 당시, 현장에서 생수를 1달러에 불티나게 팔아 어글리 코리안으로 뉴스위크지 1면 톱을 장식했다는 말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후 이 곳 동포에게서 겪은 3차례의 수모와 실망감은 쉽게 잊지 못할 서운함으로 남았다.

첫 번째는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서 일어났다.

규모도 크지만 4~5갈래로 뻗은 통로에 즐비하게 진열해 놓은 우리 농산물과 식품이 엄청났다. 수 백 가지 포장된 눈에 익은 반찬들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이곳저곳 구경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표지판이 보이질 않아 여기서 일하는 듯싶은 50대쯤 돼 보이는 한국인 직원한테 “화장실이 어디에 있죠?” 물었더니 “체, 나 원 참 여기 있잖소” 핀잔하며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바로 코앞에서 물어본 나의 잘못이니 화는 났지만 속으로 삭였다.(실은 그자가 앞을 가려 안보였는데)

그 다음은 LA 어느 한인식당에서다. 우리 소주가 국내선 4000원이지만 미국에서는 4~5배나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 출국 전에 사가지고 온 팩소주 1개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한국인 종업원 3명이 눈을 부릅뜨며 몰려와 생난리를 쳤다. 금방 경찰이 총이라도 들고 나타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마시면 큰일 난다고 호통 쳤다.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났다. 상냥한 미소로 여기 주법이 이러니 이해하라고 했으면 좋았을 걸, 나는 다소 까칠한 어조로 “한국인 식당에서 내 것 내가 마시는데도 죄가 돼요?”하고 큰소리로 그 집 술(소주)을 시켰다가 고스란히 1만8000원을 물었다.

비싸게 마셨지만 그렇다고 고맙다거나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거스름 돈 받고 돌아 나올 때까지 찌푸린 주인의 오만상은 끝내 피지 안했다.

동포끼리 좀 친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가이드에게 대신 한마디 좀 해주라고 시켰더니 멀리서 주인과 주고받는 얘기가 나를 힐난하듯 비웃는 눈빛이 역력했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를 모르고 부탁한 내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뒤늦게 후회했다.

세 번째는 투어버스에 동승한 한국인 관광객 40명과 5일 동안 여행 중 학생들에게서 느낀 점이다. 한국에서 관광 온 아줌마들은 식사 때마다 국자를 들어 자기 남편보다도 먼저 다른 일행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인정으로 우리 고유의 정겨운 미덕을 발휘했다. 하지만 유학중인 딸 같은 학생과 동석하면 자신만 알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에겐 아예 관심도 없다. 완전히 미국식으로 커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니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웬 돈이 그리도 많은지 아무튼 그들 부모가 부럽기만 했다. 영어를 아무리 유창하게 한들 인성교육이 잘못된 유학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학생들은 유학 자체가 스팩이거니 신나게 놀며 즐기다가 영어도 잘 안되고 취직도 못하면 분명 유학경비 수억을 날리고도 대학원까지 간다고 또 보챌게 뻔하다. 적지 않은 유학생들이 나락으로 떨어져 불행을 자초하는 마약의 유혹에나 빠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한국에 있는 부모는 등골이 휘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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