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국장 겸 상무이사)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국장 겸 상무이사)

얼마 전 믿기 어려운 기사를 접했다. 우리나라가 기대수명이 세계 최고인 나라이면서 동시에 경제협력개발국가(OECD)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양립불가의 모순’을 다룬 기사였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한국의 불평등 모순: 장수, 좋은 건강 그리고 빈곤’이라는 기획기사에서 한국의 이같은 특이하고 모순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가디언은 지난 2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과 세계보건기구(WHO)가 OECD 35개 가입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보고서를 인용해 2030년 태어나는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90.82세, 남성은 84.7세로 세계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성은 프랑스 88.55, 일본 88.41, 스페인 88.07, 스위스 87.70세이며 남성은 호주 84.00, 스위스 83.95, 캐나다 83.89, 네덜란드 83.69세 순이다. 불과 10년 뒤 과학계가 한때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기대수명 90세 초과를 달성할 유일한 나라로 대한민국이 떠오른 것이다. 특이한 점은 지금 우리보다 평균 수명이 높은 일본은 남녀 모두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가디언은 이러한 높은 기대수명과는 달리 한국의 2011년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자 비율)이 OECD 나라중 꼴찌인 48.6%라는 참담한 소식을 전했다. 이와 함께 독거노인이 4분의 1이며 10만 명당 노인 자살자가 2000년 34명에서 2010년 72명으로 급증,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
가디언은 세계 최고의 보건의료보장체제와 몸에 좋다면 뭐든지 먹고 하는 한국인 특유의 생활양식 상의 요인들이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의 기사를 놓고 보면 한국은 분명 이상한 나라다. 사회적 양극화가 너무나 극명하고 양지와 음지가 확연히 구분되는 나라다.
기대수명이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 치고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죽는 날까지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에 있다. 치매와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려 벽에다 똥칠이나 하고 가족들한테 병원비만 부담시키며 추한 말년을 보낸다는 것은 서로가 불행한 일이다. 요즘 중년들 몇몇이 모이면 깔끔하게 살다가 가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억지로 생을 이어가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들에겐 임종을 앞두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웰다잉법’이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면 분명 희소식일게다.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보호자 요구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와 가족이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받으며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만에 국내 의학계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존엄사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돕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중환자나 난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편안하게 숨을 거두게 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연명치료를 중단해도 진통제나 영양제, 물, 산소는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 적극적 치료가 중단된다.    
웰다잉법은 노인인구 증가와 함께 죽음에 대한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에 맞춰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 시행이 내년 2월4일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 3~4월 만 19세이상 1000명(의료진 250명, 환자와 보호자 250명, 일반인 500명)을 대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일명 웰다잉법)’ 시행에 대해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이 모른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일반인은 84.4%, 의료진 66.4%, 환자보호자는 62.8%가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좋아도 국민들, 특히 이해 당사자가 모르고 있다면 있으나 마나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고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 물론 웰다잉법을 악용해 환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에서는 웰다잉법 홍보에 나서 법 시행에 따른 불필요한 혼란을 막아야 한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한다면 본인은 물론 가정·사회적 낭비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선택권, 그것은 바로 인간이 편하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마지막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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