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조르라니 5남매를 두고 남편이 갔다. 아낙 나이 서른다섯이다. 남편은 마흔하나에 천애고아인 열아홉 살짜리 아낙을 거두어 주었다. “처자. 그 집 양딸도 아니고 수양딸도 아니고 입만 얻어먹으면서 있을 바엔 차라리 나한테 와서 밥이나 해줘 다른 일 안 시키고 밥은 실컷 멕여줄 테니까.” 그 말이 솔깃해서  뜨내기인 그를 무작정 따라나섰다. 밤낮을 이틀이나 걸어, 저만치 아래에 마을이 보이는 산기슭을 지나는데 외딴집이 보였다. 남자는 그리로 들어가더니, “여기가 우리들이 있을 집이야. 집은 보잘 것 없는 오두막이지만 쌀은 뒤꼍 항아리 속에 잔뜩 있으니께 밥은 맘대루 해먹을 수 있어.” 허겁지겁 항아리 뚜껑을 열고 보았더니 정말로 하이얀 쌀이 그득 담겨 있었다. 눈이 번했다. 이 남정네를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아침이면 일찍이 마을로 내려가면서 말했다. “나 마을로 내려가서 일공을 팔어야 쌀 장만하고 반찬거리 얻어올 수 있으니 처자는 나 올 때까지 밥이나 해놓고 아무 일 하지 말고 가다려.” 하고는 매일 마을로 내려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처자가 해놓은 밥을 흡족해하면서 먹곤 했다. 그러다 하루는 남자가 처자를 은근히 쳐다본다. “처자, 놀라지 말어. 걱정도 하지 말어. 며칠 전에 치맛자락에 뻘겋게 물든 것 땜에 놀랐지? 그리구 나한텐 쉬쉬하고 걱정했지? 괜찮여 아무 것도 아녀. 인제 처자가 어른이 됐다는 표시여.” “야?” “인제 남자하구 같이 자믄 애기 생기는겨. 애기 낳구 싶지?” “우리 날마다 같이 자잖어유?” “그렇게 자는 거 말구.” 그리곤 그 날 밤 둘은 정식으로 초야라는 걸 치렀다. 이래서 이듬해 첫애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둘째도 아들, 셋째는 딸. 넷째도 딸 그리고 다섯째는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이 막내아들을 낳고 보름 만에 남편이 간 것이다. 남편은 해소로 이탠가를 콜록콜록 잔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가기 전날 아낙을 불러 앉혔다. “내 당신처럼 부모형제 얼굴도 모르는 근본 없는 떠돌이로서 그래도 당신 만나고 그리고 애를 다섯이나 보았소. 이제 여한이 없소만 그래도 당신 호강시키고 애들 장가시집 보내려 했건만 내 명이 이제 여기까지인가 보오. 미안하오. 애들이 싹수가 있어 보이니 어떻게든지 애들 잘 길러주기 바라오. 내 죽은 혼백이 당신 도울 것이요.” 이때가 남편 나이 쉰일곱이다. 이후 소학교 졸업한 15살 난 큰아들은 서울 가 있는 마을 사람이 취직시켜준다며 데리고 갔고, 둘째는 열두 살에 읍내 어물전 점원으로 들어갔고, 두 딸은 각각 서울의 부잣집이라며 양녀로 데려갔다. 막내만 제 엄마와 같이 있더니 겨우겨우 중학교 마치던 해 제 큰형이 데리고 갔다. 이제 아낙 혼자 남았다. 그런데 아낙이 애를 낳을 때마다 혼자 그 진통에 이를 악물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용을 써서 그랬던지 치아가 하나둘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하나둘씩 빠져나가 나이 겨우 50에 이르면서는 어금니 두어 개밖에 남지 않은 합죽이가 되었다. 이때부터 마을사람들은 아낙을 오무래미라 불렀다. ‘이가 죄다 빠진 입을 늘 오물거리는 늙은이’란 뜻이다. “오무래미 말여, 이제 나이 칠십이 넘었으면 자식들 의지하며 살아도 되잖여. 죽은 영감이 남겨준 밭 한 뙈기 일구면서 혼자 사니 말여.” “말 말어, 자식들이 모셔가겠다구 해두 마다하구, 그 자리에 새로 집지어 준다는 것두 마다해서 할 수없이 중창만 해줬다는 거 안녀.” “왜 그러는 줄 알어? 죽은 영감 못 잊어 그러는겨. 날마다 옆에 묻혀 있는 영감 산소 돌보랴, 영감과 같이 살던 그 오두막집 지키랴 그래서 그러는 걸 거라구. 뻔하지 뭐.” “하긴 그 집처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를 행한 집두 드물지. 자, 봐봐, 아버지는 살아서 의리로, 엄마는 자식들을 자애로, 형은 형제들 간 우애로, 아우는 형이나 언니나 누이를 공경으로, 자식은 부모께 효도로써 대하며 살았지 않았냐 말여.” “그러니께 저렇게 모두가 복 받으며 잘 살잖여.”
 이제 올 들어 이 오무래미 할머니가 102세가 되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 해도 참으로 드문 연세다. 아녀자들이 모였다. “오무래미 마나님이 저리 장수하는 까닭이 아무래도 그 자식들의 효도 때문인가벼. 봐, 불효를 저지른 자식이 하나도 없잖여, 게을러서 어머닐 돌보지 아니하는 일, 노름을 좋아해서 어머니 맘을 상하게 한 일, 제 처자만을 좋아하여 어머닐 성내게 한 일, 놀기를 좋아해서 어머닐 욕되게 한 일, 싸움질을 잘하여 어머닐 불안하게 한 일이 하나도 없잖여.” 그러자 한 아녀자가 말을 던진다. “하지만 시방은 자식들 모두 앞세웠으니…,”
 그래도 마나님은 영감 산소와 오두막집 지키며 담담한 표정으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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