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 시인

나한상, 동백
유영삼

드디어, 향일암에 도착했을 때
동백은 뒤틀린 사자로 좌불한 채 아라한으로 있었고
금오산 거북경은 향일암 관음보살과 불경을 등에 업고
바다로 향해 나가고 있었다
딱딱한 수심을 차고 올라 온 물고기경이 부드러운 아가미로
파도경을 붙잡자 바다가 호수처럼 고요했고
바람도 일렬종대로 서서 거북경을 인도했다
아직 그 붉다던 동백의 눈도 보지 못했는데
개건축된다는 대웅전 지붕에 기와도 올리지 못했는데
벌써 거북경의 앞다리 지느러미에 조가비들의 집을 짓게 하자
몇몇 동백이 붉은 입술을 열어 노란 문장을 내걸고 있었다

아직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이와
조만간 들르겠다고 벼르는 문장가들이 있다고

가장 붉은 눈을 뜨고 산경에 들었었다는 동백
곧 물의 경전을 수록하기 위해 오백 나한상으로 서 있었다

△시집 ‘돌아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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