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 나온 임성준군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임군은 “꿈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임군의 나이는 고작 열네살이었다. 생후 14개월 무렵 급성호흡심부전증으로 산소통을 달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임군의 코에는 이날도 산소통과 긴 줄로 이어진 호흡기가 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에겐 ‘산소호흡기 소년’이란 달갑지 않은 별칭이 붙여졌었다.
이날 피해자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책임져야할 기업이 있는 사고이지만 그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음은 물론 피해 발생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정부 책임론과 함께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통령이 직접 끝까지 챙겨나가겠다”며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에 대한 개정의 뜻도 밝혔다.
참석자들은 지난 정부가 뒷짐지고 있는 사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당한 뒤 겪어온 그간의 고통들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닦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건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영유아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폐 손상 등을 입었던 것이다. 2011년 4월 이 사안이 불거졌던 점을 고려하면 사건에 대한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기업과 개인들간의 문제로 방치했던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적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따지고보면 이에 대한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게 된 것은 “깊은 절망과 고통을 느꼈을 피해자 가족들에게 국가가 함께 한다는 희망과 위로를 드리는 차원”이었던 것이다.
국가나 국가기관에서 내놓는 사과가 잦으면 그 품격과 믿음과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점을 주지한다면,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국민의 어려움을 살펴 국민과 더불어 가고자 하는 일련의 진정성있는 행위는 참 ‘아름다운 사과’다.
같은 날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과거 시국사건에 대한 감찰의 잘못을 사과했다. 문 총장은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인혁당 사건과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당사자나 가족들, 유족들을 기회가 되는대로 만나 사과하겠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으로, 완고하고 권위적이며 견고하기 짝이없던 검찰조직의 수장으로서 그간 조직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검찰총장이 검찰조직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국민과 거리가 먼 검찰이었던 셈이다.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이 늘 붙어다녔던 검찰이고 보면 개혁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이참에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 좋게 해석해보고도 싶지만, 그것을 그간 검찰이 행해온 ‘조직의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다. 특히 검경 수사권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 즈음, 검찰이 조직의 활로를 찾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 또한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검찰 조직 당사자로서 이번 사과는 참 ‘부끄러운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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