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 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배고프게 갈망하고, 바보같이 우직하게 살아라”는 명언을 남긴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리스트였다. 언제나 검은 터들넥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세상을 감동시킨 그의 삶의 근원은 미니멀리즘이었다. 잡스는 한때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했는데, 그가 돌아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케케묵은 서류와 오래된 장비를 없애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복귀 첫 업무로 물건 줄이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잡스는 ‘세상을 바꿀 제품’을 창조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으므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무엇을 할까?’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까?’를 중요시하는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를 택한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 적게 가짐으로써 여유를 가지고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물건을 적게 가지는 것뿐 아니라 ‘단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러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 한다.
미니멀리스트는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소중한 것을 위해 물건을 줄여나가는 것. 줄이는 물건은 가구 소품 옷 등 물리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물건을 탐내거나, 무의미한 일에 쏟는 에너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포함한다. 그렇기에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면 쾌적한 환경과 더불어 삶의 행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핵심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인 사사키 후미오는 누구나 처음에는 미니멀리스트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갖고 싶은 물건들이 생기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리고 갖게 된 물건을 보관하고 유지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면서, 결국 정작 중요한 물건이나 일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늘 돈과 시간이 부족해 쩔쩔매며 산다고 말한다.
돌아보면 나의 삶 역시 그랬다. 그런데 요즘 나는 새로운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꾼다. 언제부터라고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미니멀리스트였다. 102세를 몇 일 앞두고 돌아가신 할머니는 돌아가실 무렵 소유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속옷 2~3개, 신발 1개, 생활복 2벌, 외출복 1벌. 장롱을 열면 텅 비어 있고, 머릿장에는 머리빗과 손거울 손수건 등이 고작이었다. 어쩌다 며느리나 손녀들이 새 옷이나 신발을 사다드리면 꼭 한 가지를 내버려서 섭섭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아흔이 된 어머니도 할머니의 전철을 밟듯 그 모습을 점점 닮아간다. 
어느 날 보면 옷장 속이 헐렁해져있고, 어느 날 보면 이불장이 텅 비어져 있다. 오래된 프라이팬, 냄비, 그릇들이 비닐끈으로 꽁꽁 묶여져 밖으로 나가 있고, 늘 쓰던 접시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지만, 한동안은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워서 주변사람들에게 가져다 주곤 했었다.
어머니는 과일을 상자로 사는 것도 질색을 한다. 냉장고 속을 채우는 것도, 그리고 하루이틀 지나 과일이 상하는 것도 싫어해서 먹을 만큼만 남겨두고 빨리 경로당이나 이웃에 나눠줘야 한다.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와 합가한지 3년째, 나는 어머니의 이런 모습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의도적으로 닮아가려 한다.
누구나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꾸지만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소유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더 크고 좋은 걸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갖고 싶은 걸 갖는다 해도 행복감은 기대한 만큼 지속되지 않는다. 당시엔 마음에 들었던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싫증이 나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대, 과도한 경쟁에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단순한 삶이다. 진정으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면서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삶. 심플하게, 더 심플하게 비우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나다운 삶이야말로 바로 인생 자체를 새롭게 바꾸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인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