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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9) 책 나라 도서관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9) 책 나라 도서관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7.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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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을 용접해서 만든 서가에 낡은 책들이 헐렁하게 꽂힌 시골 도서관. 비브리오테카란 간판이 붙어 있다. 쿠바 혁명 직후 가장 먼저 창설한 게 쿠바 도서협회라고 한다.

주차장 없는 시골 터미널, 정차한 버스가 손님을 하나 둘 뱉어낸다. 뒤따르던 차들 때문에 길은 금세 메워진다. 차가 배설한 매연 명령에 따라 고갤 돌리면 터미널 건너 좁다란 광장 호세 마르티 동상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시선은 절로 자긍심 담아 펄럭이는 쿠바 국기에 가닿는다. 마주 보이는 건물 문화 센터 팻말도 까치발로 제 존재를 드러내려 애쓴다. 광장은 내 소유 아니냐며 눈 내리깔고 선 종탑은 유난히 우뚝하다. 녹슨 종을 두드리면 콜럼버스가 깨어나 여기가 아름답기론 갑이라고 외칠 것 같다. 정오 넘긴 햇살은 종탑 위엄을 비웃 듯 광장 구석구석 데우기 바쁘다. 종탑 지령을 받은 듯 홀로 앉은 사람은 책을 읽고, 둘 이상이면 담소를 나눈다. 자리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만 선 채로 폰 들여다보는 벌을 받고 있다. 완경사의 시가지 가게들마다 십 미터 넘게 줄 세운 사람들로 퍼포먼스를 벌인다. 까마득한 거리를 바라만 봐도 다리가 아픈데, 발품 팔지 않고 까사가 구해지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사흘 동안 묵을 곳을 찾아 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좀비처럼 헤맨다. 중간 쯤, 판자 건물 창에 책 읽는 아이들 투영된 모습이 평화롭다. 

숨죽이고 판잣집 내부를 스캔한다. 나무 건물 트러스며 천장에 하얗게 칠해진 페인트, 학교라기엔 좁고 아이들 나이가 제각각이다. 입구에 걸어둔 간판을 더듬거려 읽어본다. 비브리오테카라고 적힌 걸 보니 도서관이다. 인구 몇 되지 않는 도시에 이런 게 있다니 교육과 의료에 돈 아끼지 않는 쿠바답다. 발소릴 낮춰 건물 안으로 걸음을 들인다. 왼쪽 벽에서 군복 차림의 피델 카스트로가 노려본다. 책 읽던 애들도 고갤 들어 이방인을 살핀다. 애들 눈치 따윈 무시한 채 좀 더 깊숙이 들어간다. 사서 담당으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 들어 살짝 웃는다. 책 읽기 위해 들른 사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단 뜻이다. 피델 카스트로 혁명 포스터에 주눅 들었던 근육이 스르르 풀리고, 여자의 낡은 책상과 허름한 서가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용접한 철근 뼈대 위 합판 얹은 서가는 퍽 인상 깊다. 낡고 빛바랜 책들은 녹슨 철근 서가와 잘 어울리지만, 혁명 구호 외치는 피델 카스트로 그림은 왠지 생뚱맞다. 그런 일에 무덤덤해진 아이들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 책 읽기에 몰입하고 있다. 책이 빛바랬거나, 서가가 녹슬었거나 상관하지 않고 활자가 낸 길을 더듬는다.     

미로처럼 펼쳐진 곳, 골목 도서관도 눈길을 끈다. 머리 희끗한 노인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몸소 혁명 대열에 섰던 그에게도 더 파고들고픈 신산한 삶이 있었나 보다. 그늘 도서관에서 책 펼친 젊은이도 보인다. 그는 자전거에 천막 씌운 비씨 택시 위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손님 자리에 기댄 채 안장에 다리 걸친 자세에서 절박함 따윈 보이지 않는다. 자발적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려는 듯 낡은 책만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반세기 허물을 벗고 있는 바로크식 건물, 우화의 순간에도 책 속 길을 따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준비하는 열 살 남짓 학생도 보인다. 음영 깊숙한 곳에서 더듬는 글의 행간에 선행 학습이나 복습의 강박감 같은 게 보일 까닭이 없다. 1959년 혁명 직후 가장 먼저 창설한 게 쿠바 도서협회였다고 한 게 기억난다. 먹고 사는 게 빠듯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책 가까이 하는 습관 들인 쿠바 교육부. 책만 펼쳐들면 어디나 도서관이 되는 가슴 뭉클한 풍경화, 책 나라 도서관은 스스로 만들어낸 창작품이다.     

서가에 꽂힌 책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제목이나마 읽을 수 있는 건 몇 권뿐이다. 사서 담당에게 겸연쩍은 인사를 남기고 돌아 나오는 동안, 녹슨 서가며 헐렁하게 꽂힌 책들 사이에 측은한 시선이 얼쩡거린다. 스마트폰에 내몰린 책을 실어와 책 나라 도서관 공백을 메워주면 어떨까. 한국어 강사를 파견해서 이곳 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자발적 가난이 천민자본주의보다 훨 낫다는 걸 책을 읽어 깨우치게 한다면 그들 자긍심은 더 커지겠지. 
시내 어디서도 떼 지어 모여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작년엔 그러지 않았는데 어찌된 일일까. 통신망 늘리는 공사한다면서, 와이파이 존도 정부가 통제한다고 누군가 귀띔해 준다. 책을 내던진 젊은이들이 폰 사는 걸 본 쿠바 도서협회에서 정부에 로비를 한 건 아닐까. 책 나라 도서관 리모델링한 자리에 삼성, 엘지 로고 번쩍이는 폰을 진열할까봐 지레 겁먹었나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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