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금연 글씨는 한국인 만나기보다 힘들다. 병원이나 혁명기념관 쯤 돼야 ‘NO FUMAR’ 란 표시가 보인다. 국민 건강을 내세운다는 보건부 정책은 왠지 미심쩍다. 시가가 설탕, 커피와 함께 3대 수출품이기 때문일까. 미소 더불어 시가 문 퍼포먼스는 때와 장소, 남녀 또한 가리지 않는다. 여행 선물 품목에서도 시가는 빠지는 법이 없다. 북한 외교관들이 외교행랑에 넣어 반출한 쿠바 시가를 되팔아 이익 챙긴 역사도 꽤 오래 됐다. 골목 지나칠 때 코로 스며드는 냄새는 근처에 초콜릿 가게가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아기 안은 여자도 시가 문 사람에게 인상 찌푸리는 법이 없다. 여기저기서 시가 연기 피어오르는 풍경이라야 쿠바답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건 무늬만 시가일 뿐 죄다 짝퉁이다. 시가를 담배라 낮춰 부르는 건 큰 모욕이 틀림없다.   

자연 경관 빼어난 비냘레스 갔을 때다. 호객꾼이 터미널 근처에서 배낭 여행자를 끌어 모았다. 정원이 채워진 순간 뒷골목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마끼나 택시는 터미널 주위에서 영업하지 못하게 약속된 모양이다. 홍콩 아가씨 클레어, 아일랜드 커플과 짧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호객꾼이 운전기사에게 일행을 인계했다. 여행자를 싣고 털털거리며 출발한 마끼나 택시가 채마밭 앞에서 시동을 껐다. 고장 난건가 고개 갸웃거린 순간 들판 끝나는 곳 산자락을 가리킨 운전기사가 말했다. ‘저 돌산 모양이 마르티를 닮았어요.’ 그는 혁명 1세대 민족시인 겸 사상가 호세 마르티 홍보에 열 올리느라 바쁘다. 그가 가리킨 경사진 암반엔 누워있는 사람 얼굴이 흐릿하게 드러난다. 바위 덩어리가 호세 마르티 얼굴 형상인지는 관심조차 없다. 시선은 여전히 눈앞에 펼쳐진 꽃들에 머물러 있다. 연두색 이파리 끝 분홍색 꽃을 본 순간 한눈에 꽂히고 만 거다. 택시 기사 옆구릴 찔러 내가 물었다. ‘이게 무슨 꽃이죠?’ 그는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입에 물고 있던 시가와 연두색 이파리를 번갈아 가리켰다. 허리를 뒤로 젖힌 그가 시가를 빨아 당긴 뒤 입에 잠시 머금었다가 내뱉는다. 연기가 그의 얼굴을 안개처럼 휘감는다. 시가 피우는 모습에서 비로소 남자 품격이 드러난다.  

열살 아들을 태운 마부가 시가를 문채 마차를 몰고간다. 모자와 작업복이 시가와 쓰리콤보를 이룬다.


택시기사가 손짓으로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어두컴컴한 창고로 안내한 그가 시래기처럼 매듭지어 철봉에 빼곡하게 걸쳐둔 다발들을 가리켰다. 꾸들꾸들 말라가는 이파리 한 개를 뗀 그가 입에 문 시가와 견주어 본다. 창고에는 처마 끝 메주가 막 꽃을 피울 때의 냄새가 몰려 있다. 숨을 더 깊이 들이쉬면 발효 시작된 청국장이며 썩기 시작하는 낙엽 냄새도 얼핏 스쳐간다. 바깥 움막에선 카우보이모자 쓴 남자가 시가 만드는 시연을 하고 있다. 그의 능숙한 손놀림을 지켜보지만 나무판자 위 갈색 이파리와 뭉툭한 칼, 유리병에 든 풀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빠른 손놀림으로 시가를 말던 그가 빨아들인 연기를 천천히 내뱉는다. 곧이어 움막은 초콜릿 향 안개에 휘감긴다. 무늬만 낙엽 태우는 연기인 안개, 카리브해의 습기와 따가운 햇살,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쿠바의 낭만이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오래 전 담배를 끊었지만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간다. 시가를 한 모금 빨면 어떨 거라는 느낌을 아니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면 걸작 한편이 탄생하지 않을까. 카우보이모자 챙 너머로 들뜬 모습을 훔쳐본 그가 방금 만든 시가 한 개를 내밀고 라이터 켤 준비를 한다. 그걸 본 홍콩 아가씨 클레어가 ‘머금은 연기를 내뱉긴 하지만 구강암 걸리기 쉽다는 통계가 있어요.’ 라고 귓속말을 한다. 나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잇게 될까봐 걸작마저 포기하고 손사래 친다. 쿠바 보건부의 건강 시책을 믿지 못하는 건 클레어와 나뿐인 것 같다. 

미국 폭스 뉴스에서 쿠바가 신 장수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백 세 넘긴 남녀 비율이 거의 같고, 치매도 없으면서 거동이 자유롭다는 게 여타 장수 국가와 딴판이다. 보도 내용을 두고 국민과 정부의 해석은 서로 다르다. 국민들은 춤과 노래에 대한 열정, 긍정적인 마인드에다 채소를 많이 먹어 그렇다고 말한다. 보건부에서는 무상의료, 예방의료, 가족주치의제도 등 앞선 의료시스템 덕분 아니냐고 되받는다. 양쪽 주장이 엇갈리긴 해도 건강하게 백수 누리는 노인들이 많으니 국민과 보건부의 미션은 성공했다. 지속 가능한 사회의 롤 모델 쿠바를 장수 국가로 인정받게 해 준 또 하나 쾌거다. 입에 물고 사는 시가지만 청정 자연이 키웠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몸에 해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홍콩 아가씨 클레어뿐이다. <계속>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