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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7) 카리브해 낚시꾼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7) 카리브해 낚시꾼
  • 김득진 작가
  • 승인 2017.07.13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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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갯바람 날아드는 방파제, 말레꼰을 혼자 걷는다. 길에는 전날 밤 마신 술병들과 매듭 묶은 콘돔도 버려져 있다. 밤에 지나친다면 더없이 민망한 핫 플레이스인 게 분명하다. 청소부나 재활용품 줍는 사람들이 여태 거치지 않은 탓일까. 주위를 둘러봐도 나 혼자뿐, 갈매기들만 텅 빈 바다 위를 날고 있다. 카리브해 코발트색에 몸 적시며 호젓하게 걷는 동안 달달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몽상 떨치라고 그러는지 난데없이 빠른 노랫소리가 날아든다. 자기검열로부터 해방된 내가 낯선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든다. 곧이어 말레꼰 너머에서 남자 셋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깨 움찔거리는 나를 봤는지 소리는 더 커지고 내용도 모르는 가사가 갈매기를 쫓는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끌어당긴 건지,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몸을 비비 꼬며 말레꼰에 다가간다. 로까로까, 무슨 뜻인지 몰라도 흥겨운 리듬과 박자에 몸을 죄다 맡겨버린다. 어깨며 엉덩이를 규칙 없이 흔드는 막춤이 그들 눈에 낚싯줄에 딸려오는 물고기로 비쳤겠지. 몸을 흔들다가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이 어딘지 올려다본다.

키 큰 남자의 왼손에는 비닐봉지가, 오른손엔 검정색 맥주 캔 같은 게 쥐어져 있다. 요란하고 경쾌한 노래는 둥근 통에서 흘러나온 게 확실하다. 그들과의 시간이 보이지 않는 낚싯줄로 연결되어 앞일을 예견할 수 없는 탓일까. 말도 통하지 않고 가사 내용도 모르지만 마냥 흥겹다.    
말레꼰이 높아서 그들과 눈 맞추려니 목이 아프다. 방파제 위를 가리킨 순간 키 작은 남자가 손을 내민다. 세 남자와 같은 높이에서 몇 마디 얘길 주고받는다. 그들 중 키가 큰 알레한드로는 사설 경비업체 직원이다. 새벽 근무 끝나는 시간 맞춰 낚시하러 온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더듬거리며 말한다. 밤을 샜으면서도 환하게 노래 부르는 그의 표정엔 구김살 하나 없다. 쥐고 있는 비닐봉지 속엔 새벽에 잡은 생선이 들었지 싶다. 세 사람 손을 번갈아 쳐다봐도 물고기 잡을 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펄떡거려야 할 물고기가 미동도 안 하는 걸 보면 돌로 내리쳐서 잡은 걸까? 알레한드로의 더듬거리는 스페인어 외엔 의사소통 수단이 없어 꼬치꼬치 물어보진 못한다. 나머지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쿠바 아바나 해안에 카리브해 거센 파도를 막기 위해 설치한 방파제, 말레꼰은 밤이 되면 연인들로 붐비는 핫 플레이스다. 테트라포트로 파도의 에너지를 감소시키는 우리와 달리 아래 위 2단으로 방파제가 설치돼 있다.


질문해서 반응이 없거나 대답이 궁할 때면 머쓱하게 웃으며 어깨와 엉덩이를 실룩거린다. 더듬거려 묻고 답하는 동안 알레한드로의 직업과 나이, 이름을 안 것만도 대단하다 싶다. 입고 있는 유니폼만으로도 그의 말이 거짓 아니란 게 확인된다. 서른일곱 살 알레한드로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몇 인지, 경비원 월급 받아 쪼들리진 않는지 궁금하다. 스페인어 문장을 조합하던 나는 더듬거리는 그가 대답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몸을 흔든다. 어색한 틈이 생기면 로까로까, 노랫소리가 공백을 메워준다. 쿠바에서 태어나 특별시기를 거치며 어려움을 이겨냈을 알레한드로. 그들에게 춤과 노래는 밤잠 설쳐가며 도둑을 지키게 할 에너지 음료다. 막춤 추는 동안 육 킬로미터 넘는 말레꼰 끝부분에 다다랐다. 다리가 슬슬 아파오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갈 건지 걱정스럽다. 알레한드로가 내 맘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레꼰에서 뛰어내린다. 까사, 까사 하며 길 건너편을 가리키는 걸 보니 집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앞서가던 알레한드로가 구멍가게 앞에 멈춰 선다. 수줍은 표정으로 비스듬히 세워둔 진열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거기엔 값싼 시가 대신 몇 가지 외국 담배가 진열되어 있다.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다가오다 멀어진다. 더듬거리는 말 대신 손짓과 표정으로 담배 한 갑 사 줄 수 없겠냐는 뜻을 넌지시 전한다. 말레꼰을 막춤 추며 걷는 동안 즐거웠는데 입을 싹 닦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돌아서서 주머니를 뒤져 본다. 보이는 건 외국인용 지폐뿐이다. 내국인용 화폐를 약간 바꿨는데 어디에 넣어 뒀을까. 지폐를 한 장 한 장 넘기니 돈 묶음 속에 모네다 몇 장이 감춰져있다. 이 달러 가치의 모네다를 알레한드로 손에 쥐어준다. 그걸 본 그가 돈을 치켜들고 고함을 지르며 펄쩍펄쩍 뛴다. 곁에 섰던 알레한드로 친구들도 나에게 달려들어 인증샷을 찍는다. 대어를 낚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인 듯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인사도 잊은 그들은 흥에 겨워 춤추고 노래하며 골목으로 사라진다. 말 그대로 그들이 물고기를 잡긴 한 걸까. 새벽잠 줄이고 잡았다는 생선은 나를 꾀기 위한 미끼가 아니었을까. 그들 왁자지껄한 소리 남겨진 골목에 카리브해 안개가 뽀얗게 밀려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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