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들어서니 온통 팬터마임 분위기에 젖어 있다. 흥청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물 흐르듯 스며든다. 숨 몇 번 들이쉬니 해피 벌룬 흡입한 듯 몽롱해진다. 분절된 언어가 허공을 떠돌고, 배웠던 스페인어가 오랑우탄 말처럼 귓바퀴에 맴돈다. 상술 어눌한 난전이 오픈게임처럼 열리는 곳도 있다. 체 게바라 베레모 쓴 강아지가 관객을 희롱하고, 갸우뚱한 판자에 기댔던 책이 무료한 무릎 빌려 눅눅한 활자를 말린다. 까치발 치켜드는 조명 땜에 음영 속으로 몸 감추면, 뜨겁고 습한 바람이 관객을 뒤쫓는다. 모퉁이 돌아 간신히 숨 고른 순간 어디선가 날카로운 조명이 날아든다. 빛을 쏘아대는 곳이 어딘가 손 가리개하고 살필 무렵 고소한 냄새가 몰입을 방해한다. 조명은 무대 위 스테인리스 손수레와 위생복, 모자로 몸 가린 남자 배우에게 모아진다.  

남자가 허리 숙여 창고 문을 열면 손수레 아래쪽이 밝아진다. 그가 들통을 높이 들어 올려 압출기에다 기울인다. 겔 상태의 팬터마임 소품이 불빛에 훤히 드러난다. 압출기 가득 채우고 난 들통을 제 자리에 넣고 난 남자 오른손 힘줄이 불거지며 레버가 서서히 움직인다. 아래쪽 노즐에서 빠져 나온 겔 상태 소품이 보글거리는 기름 속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진다. 달궈진 솥이 별 무늬 단면의 소품을 빨아들인 순간 기름옷 껴입은 반죽에서 거품이 뽀글거린다. 갈고리로 반죽을 타래 짓는 건 살사 추는 동작이랑 비슷하다. 잠시 후 그가 건져 올린 타래를 살펴본다. 잘 익은 추러스가 갈고리에 매달려 기름을 뚝뚝 흘리고 있다. 타래에서 떨어지던 기름이 멎은 걸 본 가위가 제 몸 길이로 추러스를 자른다. 종이 고깔에 추러스를 담고 설탕 흩뿌리는 남자 몸놀림은 무료급식소 배식 담당처럼 자연스럽다.  

초콜릿 박물관 건물에 더부살이 하는 추러스 손수레. 위생복 입은 남자가능숙한 손놀림으로 연이어 추러스를 만들어 종이 고깔에 담아 줄 선 사람들에게 판다.


남자의 진지한 표정에 숙련도가 오롯이 드러난다. 동작 하나하나 알파고 바둑 두듯 빈틈없다. 고소한 냄새 풀풀거리는 어깨너머, 긴장 풀린 손이 주머니를 뒤진다. 유기농 아닌 재료가 귀한 곳이니 성분은 따질 게 없다. 줄이 차츰 줄어들고 종이 고깔에 추러스 담는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앞에 섰던 여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쥐고 있던 동전과 봉지를 맞바꾼다. 추러스를 맛보는 여자 얼굴에 함박꽃이 핀다. 맑은 기름만 쳐다봐도 입안에 도는 감칠맛 땜에 침이 고인다. 좁은 손수레 위 팬터마임은 수없이 반복된다. 연습 때 흘렸던 땀방울이 빚어낸 마스터피스가 연이어 태어난다.   

바싹하고 고소하고 달콤한데도 뭔가 빠진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좁고 긴 실내를 둘러본다. 손수레 비추던 조명이 서서히 옮겨가 초콜릿 박물관 나무 문짝 뚫린 곳을 은은하게 비춘다. 깔리엔떼 초코라떼 뿐인 메뉴판이 건물에 비스듬히 걸쳐진 게 불빛에 드러난다. 구멍에 입을 갖다 대고 따끈한 액상 초콜릿을 주문한다. 곧이어 뚫어진 구멍으로 유리잔이 등장하고, 함께 내민 손 위에 코인을 얹어 값을 치른다. 유리잔은 너무 뜨거워 맨손으로 쥐고 있다간 떨어뜨릴 것 같다. 주위를 휘둘러본다. 조명이 둔중한 철재 테이블을 비춘다. 초코라떼가 쏟아질까봐 거길 향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유리잔 쥐었던 손을 떼자마자 귀에 갖다 대는 건 습관이다. 

의자에 앉아 유리잔 속 초코라떼를 스트로로 빨아들인다. 입에 꽉 차오르는 무직한 열기가 긴장을 몰아내 굳었던 어깨 근육이 축 늘어진다. 몸 낮춰 바라보니 그때서야 객석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관객들도 퍼포먼스 펼칠 단역을 제각각 맡은 모양이다. 각양각색의 분장과 표정으로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무언극이 식상할까봐 기타 소리 효과음이 나지막이 들려온다. 무대 소품들 뒤로 단체 관광객 한 무리가 가이드 따라 지나가고, 초콜릿 향 간직한 연기가 공간을 메운다. 조명은 시가 연기를 오브제 삼아 기하 무늬를 수없이 찍어낸다. 남자와 손수레가 주인공인 팬터마임 한 편은 눈요기로 모자람이 없다. 순간, 숨겨져 있던 욕심의 타래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폰을 켜서 추러스 생산 공정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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