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아바나 성 프란시스코 광장에 들어선다. 오벨리스크가 없을 뿐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과 닮았다. 유람선이 부려 놓은 관광객 그림자가 땡볕을 지우고, 그걸 쫓는 경찰들 눈초리에 졸음이 묵직하다. 눈꺼풀 게슴츠레한 경찰에게 우체국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눈을 번쩍 뜬 그가 건너편 건물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에 사자머리 모양 우체통이 보인다. 난전에서 엽서를 골라 우체국에 들어선다. 남자 직원은 대뜸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생긴 거며 옷차림이 쿠바노와 달라서다. 꼬레아란 대답을 건성으로 건넨 순간 노르? 수르? 라며 되묻는다. 쿠바인 누구에게나 듣는 질문이다. 순서도 다르지 않다. 수르라는 대답을 들은 뒤부터 직원은

쿠바의 우체국 입구 모습으로 사람 형상이 우체통이다. 이 형상의 입에 편지나 엽서를 넣으면 된다.

나를 향해 턱을 괸다. 귀찮은 상대를 만난 듯 시선을 피한다. 사이 나쁜 이복형제 얘기가 떠올라서다. 하지만, 발품 팔아 가까스로 찾았는데 어쩌랴. 

나는 돌렸던 고개를 창구에 들이민다. 우표 팔 생각을 잊은 직원이 말한다. ‘나도 강남 스타일, 할 줄 알아요.’ 직원의 서툰 제스처에 정감이 묻어난다. 머뭇거리다가 머릿속에 메모리된 걸 광속으로 돌려 본다. 쿠바 오기 전 국립국악원 공연 본 게 기억난다. 폰을 재빨리 켜서 갤러리를 훑는다. 화면을 터치한 순간 요란한 영상이 오방색 춤사위를 펼친다. 상모 돌리며 장구, 꽹과리, 북을 치는 판놀이 동영상이다. 그걸 내밀자마자 눈에서 광채가 난다. 화면에 붙박이 된 시선이 동화 속 세상을 헤매는 것 같다. 기특한 맘이 들어 백팩을 열고 태블릿을 꺼낸다. 아이돌 그룹 뮤직 비디오를 그에게 보여주려는 거다.   

태블릿을 켜자마자 컴컴하던 우체국이 환해진다. 시스타의 레드 벨벳 노래와 영상이 실내를 밝혀서다. 동화 속 세상을 거닐던 직원 눈이 서양 인형처럼 동그랗게 변한다. 초점거리 가깝던 얼굴을 태블릿 속으로 밀어 넣을 기세다. 노래며 율동에 빠진 그의 표정에서 오랜 가난의 흔적이 지워진다.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까마득 잊은 걸까.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 전주가 들려온 순간이다. ‘이걸 동영상으로 찍어도 돼요?’ 그의 말에 그게 뭐 대수냐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직원이 잽싸게 폰을 꺼내 태블릿 화면을 겨눈다. 그럴 땐 개구쟁이 티를 감추지 못한다. 그가 색감이며 촬영기법이 탁월한 뮤직 비디오에 몰입한다. 마흔 전후 남자가 아이돌 가수 뮤직 비디오에 정신을 빼앗기는 나라. 닫힌 사회에서 노래와 춤 없이 산다는 게 무의미했나 보다.  

직원이 동영상 찍는 동안 우체국을 둘러본다. 우리 칠십 년대랑 견주면 될 인테리어다. 기념우표 모아둔 액자에 시선이 머문다. 쿠바 스탬프가 찍혔으니 꽤나 소장 가치가 있을 법하다. 노래가 끝났을 무렵 그에게 물어본다. 기념우표 낱개도 파느냐고. 여태 웃음을 지우지 못하던 직원 표정이 난감하게 바뀐다. 액자에 든 걸 몽땅 사야한다는 거다. 그의 말에 주머니를 뒤지던 손이 뒷걸음질 한다. 환전이 쉽지 않은 나라여서 지레 포기하고 만다. 머쓱한 순간을 모면하려는 질문이 그에게 날아간다. 부친 엽서가 왜 석 달 뒤에 도착하는지. 그가 비행기며 배가 그려진 서류를 보이며 대답한다. 쿠바에선 엽서를 배로 보낼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그의 손가락은 답답하다는 듯 몇 번이나 배를 가리킨다. 느린 삶에 익숙해진 그가 눈동자를 바삐 굴리는 게 어색하다. 태블릿에선 박자 빠른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뮤직 비디오가 홀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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