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충북학연구소장)

▲ 김규원(충북학연구소장)

젊은 세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잠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침대를 물려줄 수는 없는 일,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기대와 경쟁적인 사회분위기로 인해 지쳐있을 이들에게 침대보다는 튼튼한 심신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황량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들판에 핀 한 송이 클로버 같은 삶이 예측이 되어서일까? 물론 기성세대들이야 거의 매일을 술과 담배, 게임 그리고 뒷담화로 보내면서도 너희들은 이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지만 귀신 곡하는 소리라고 하면서 효과도 없다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무슨 말을, 어떤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까. 또는 이들은 무엇을 받기를 바랄까. 오로지 현금? 아니면 카드라도? 하하하.

우리가 만들지도 않은 이념이나 편견과 고정관념에 휘둘려서 사람을 나누는 악습이야 어느 시대에나 있다고 하겠지만 사회 제반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사라지려고 함은 지극히 우려되는 현실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이러한 비합리, 몰이성적, 이기적인 행동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한 근원, 근본적인 원리를 알려야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꿈. 드림, 청춘, 도전 그리고 실패와 좌절, 실연과 실망 등등 청소년들에게 양념처럼 존재하는 이러한 단어들은 성장과 생존에 통과의례임은 이미 수많은 선조들에 의해 입증된바 있으니 그렇다고 해도 요즘같이 조금씩 모든 것이 4월의 봄날처럼 살아나는 시기일수록 꿈을 잘 가꾸어나갈 수 있는 매뉴얼을 전달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이렇게! 푸른 하늘 가득히 넘실대는 부푼 꿈, 일만 칠천 유구한 소로리 볍씨 옛 터전 자랑스런 삶터에서 높은 기상 이어받아 배움의 날개 펴고 꿈을 꾸는 우리들, 아름답고 슬기로운 희망씨앗 되리라 자라고 또 자라라 으쓱으쓱 창리 어린이. 멋진 이 가사는 주지하다시피 최근 문을 연 어느 초등학교의 교가이다. 대개의 교가들이 주변 산의 기상과 정기를 이어받거나 심지어 먼저 설립된 학교들이 주변 산 이름을 선점해서 사용했을 경우에는 권역 바깥에 있는 산 이름까지도 가져와서 교가에 활용한다고 하고, 강의 경우에도  어느 어느 강물의 쉼 없는 물줄기, 굽이치는 물결처럼 자신들의 이상을 펼쳐나간다는 것에 비교하면  이 초등학교의 교가는 무척이나 신선하다. 일단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인 소로리 볍씨에 자신들의 희망을 연결한 것부터가 그러하며 몇십, 몇백년이 아니라 일만 칠천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연결한 것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아이들의 꿈을 수치화 한 것 같아서 놀랍고 감동스럽기 까지 하다. 요즘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치사하게 말 한마디에 삐치고 싸우는 어른들의 세계와는 달라서 감격이 한량이 없고 희망이 솟구친다. 더욱이 이 가사 속에는 남녀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표현들도 없고 또 지역중심이지만 사실은 지역이기주의나 폐쇄적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단어도 없으며 백로나 왜가리 등등 조류독감을 옮기는 것으로 의심되는 하얀 새들을 등장시키지 않은 것 역시 축산 농가를 배려한 것으로 생각된다.(우연의 일치지만) 당연하게도 봉건주의적이거나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조하는 군국주의적 색채 역시 없다. 모르긴 해도 아이들의 장래에, 그리고 커가면서 기억 속에 내재하여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방향을 제시하고 위로도 해줄 듯하다.

청소년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구체적인 과학적 혹은 객관적인 따라서 검증이 가능하고 내적외적 타당도가 확보된 것만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최소한의 합리적이면서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지식과 지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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