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09-23 07:21 (일)
‘포석문학’ 창간호 발간을 축하하며-'민족해방의지주' 조명희 선생과 의만남
‘포석문학’ 창간호 발간을 축하하며-'민족해방의지주' 조명희 선생과 의만남
  • 동양일보
  • 승인 2017.08.15 2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순옥(시조시인·전포석기념사업회장)

세상에서 부를 구하느니/ 가을의 썩은 낙엽을 줍지/그것이 교활의 보수로 온다더라//세상에서 명예를 구하느니/ 사막 길 위에 모래탑을 쌓지/ 그것이 아첨의 보수로 온다더라 //세상에서 이해를 얻으려니/눈보라 벌판에 홀로 돌아가지/그들 돗 같은 야인 앞에 구차히 입을 벌리느니//그러면 고적한 동무야/연옥의 신음자야/안아라 너의 가슴을/냉가슴을 안고 가자 가자/저 저문 사막의 길로 저 별 밑으로//그 별에게 말을 청하다가/별이 말없거든/그때 홀로 쓰러지자 홀로 사라지자
조명희 시「별 밑으로」 전문

 위의 시는 진천에서 태어난 포석 조명희 선생(1894-1938)의 많은 시 중에서 내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시 중의 한 편이다. 시를 읽고 느끼는 바는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시를 대할 적마다 선생의 유언장 같은 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드디어 포석 선생을 기리는 ‘포석문학’ 창간호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참으로 잘생긴 옥동자다. 선생을 기리는 글과 사진과 자료들의 두툼한 이 책을 소중하게 쓰다듬어 본다. 8.15 해방의 감격을 되새기는 8월에 발간돼 더욱 느낌이 크다.

 선생은 한국의 현대 희곡, 시, 소설 어느 분야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학가다. 선생이 근대문학초창기 한국문단에서 활동한 기간은 8년 정도로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활동으로 민족주의적 극작가, 사실적인 시인, 현실비판의식이 높은 프로소설가라는 선구적 업적을 뚜렷이 남겼다. 각 부분에서 최초라는 이름을 달고...선생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질 때 진천만세운동을 주동하여 구속된다. 진천성공회 신부님이 본인의 교회 어린신자였던 선생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서 3개월 만에 출옥된다. 하지만 옥에서 나온 날로부터 요시찰 인물이 되어 일경들의 감시를 받게 되자 동경행을 결행, 유학의 길에 올라 동경의 동양대학 동양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요시찰인물의 주홍글씨는 뗄 수가 없어 방학 때 고국에 돌아오려면 부산에서부터 일본형사가 따라붙어 진천에 도착하면 낮에는 집에서 생활하고 밤이면 주제소에 데려다 재우는 일상이 되풀이됐다. 선생은 그들의 회유를 단호히 거절하고 1928년 7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포나루에서 홀연히 고국을 떠나 소련으로 망명, 작가로서 인정받아 ‘작가의 집’에 거주하며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문학의 꿈을 펼친다.  
 1937년 소련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의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려한다. 소련은 자신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연해주의 불모지를 개척하여 자리 잡고 살던 우리나라 백성들이 일구어 놓은 땅을 군사기지로 써야한다고 모두 빼앗고 중앙아시아로 쫓아 내려하자 선생을 비롯한 지도층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자 소련은 사회 지도자급 2,000여 명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는데, 선생 역시 친일파이자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1937년 9월 체포되어 이듬해 5월 11일 공개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KGB 건물 지하에서 총살, 44세의 아까운 생을 마감한다. 

 소련은 사회 지도자들을 무참히 처형하고는 연해주 지방의 한인들에게 회의가 있으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광장에 다 모이라고 한 뒤 영문도 모른 채 빈손으로 회의하러 나온 사람들을 짐짝처럼 화물열차에 실어 중앙아시아 추운 벌판에 내다 버린다

그해 겨울은 더욱 혹독한 추위여서 마치 지옥 같은 곳이었단다. 밤이면 기온이 너무 떨어져  땅을 둥글게 파내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서로 어깨를 곁고 바람막이를 만들어 주었는데, 가장 바깥쪽을 에워싼 젊은이들이 하루 밤이면 몇 명씩 얼어 죽어갔고 가운데 있던 사람들 중에는 압사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는 말을 전해  들었노라고 선생의 막내 아드님이신 조 블라지미르 님(80. 현 모스크바 거주))은 전해 주신다.
 
저물어 깜깜한 밤 사막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별빛! 상상만 해도 얼마나 황홀한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라면 하나같이 빠져들었던 사회주의 이론 ‘똑같이 일하여 똑같이 나누자’에 역사 이래 불평등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겐 이상향이었다. 그런데도 선생은 “그 별에게 말을 청하다가/ 별이 말없거든/ 그때 홀로 쓰러지자 홀로 사라지자”라고 하셨다 

 그렇다. 선생은 이미 본인의 비감한 마지막을 예견하고 각오하셨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싫어 떠났지만 망명지 러시아에서 큰 작가로 인정받고, 문학을 통해 조국광복을 앞당기는데 초석이 된 사실들이 이제 밝혀지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이제 고향 진천과 충청도에서, 조국 대한민국에서 선생에 대한 조명이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그리하여 감춰져 있었거나 가려져 있었던 암울한 시대를 열고 우리의 민족혼과 우리의 민족문학사를 다시 보는 혜안을 가져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