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서원대 교수)

▲ 정민영(서원대 교수)

얼마 전 우리 지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극심한 가뭄으로 애를 태우며 단비를 기다리던 농심을 처참하게 짓밟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가옥을 초토화시켜 삶의 터전을 앗아가기도 했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는 가뭄으로 많은 농작물들이 말라죽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여 수확조차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잡초마저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 정도의 가뭄이었으니 농작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가뭄 끝에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고맙게 반기며 겨우 해갈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물폭탄이라니 하늘이 무심하다 할 수밖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우리 지역은 예로부터 자연 재해의 피해가 별로 없었던 지역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자연스러워서 산사태가 거의 없고 물길이 자연적 흐름에 어긋나지 않아서 큰비가 내려도 수해를 입지 않았다. 해마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수재 의연금을 모금하여 타시도로 보내주곤 하던 우리 지역이다. 이는 오래 전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평온한 삶을 후손에게 물려준 조상들의 덕분이다. 그런 우리 지역에 얼마 전 기상관측 이래 하루 최고 강우량으로 기록되는 비가 쏟아지는 엄청난 재앙이 닥쳐온 것이다.
 자연의 변화로 발생하여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재앙을 천재라고 한다. 이번에 우리 지역을 휩쓸고 간 폭우의 재해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우리 조상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물가에 살아도 신중하게 고려하여 수해를 면했고,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을 피하고 양지바른 곳에 거주하여 안전을 도모해 왔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촌락이 오늘날의 자연마을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이곳에서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왔다. 조상들의 아주 단순한 선택과 결정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넓게 보는 슬기와 기본에 충실한 삶의 자세로 인하여 지금까지 천재의 위험을 피해 온 것이다.
 천재와 달리 사람의 인위적 활동에 의하여 일어나는 재앙을 인재라고 한다. 사람이 원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인재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우리 지역의 수해를 온전히 천재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 기회에 작금의 우리 주변 모습을 돌아보자. 산업단지와 공업단지 조성을 비롯하여 아파트단지와 전원주택단지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산과 언덕이 깎여 나가고 도로 건설로 얼마나 많은 문전옥답이 사라지고 있는가. 이와 같은 인위적 활동에 의하여 금수강산이 빼어난 자태를 잃어가고, 빗물을 적절히 흘려보내면서 머금고 있다가 필요할 때에 천천히 다시 돌려주던 우리의 산과 들이 적잖이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하천을 정비한답시고 오랜 세월 동안 알맞은 유량과 유속에 따라 자연스럽게 굽이굽이 흘러온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려놓아 화를 자초한 곳도 있다.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다 보니 큰비가 내리면 산사태와 하천 범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빗물이 스며들 곳이 없어 아스팔트 위로 세차게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의 폭우로 인한 수해 또한 인위적 자연 훼손과 무관하지 않으니 이를 천재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록적인 물난리를 계기로 청주시에서는 뒤늦게 조례를 개정하여 수재민들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도 고치고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외양간을 지어야 할 것이다. 청주시가 많은 예산을 들여 설치한 우수저류시설은 이번 물난리로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빗물이 설계 용량에 채 미치지 않은 상태에서 침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계도 문제지만 제반 시설의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하고, 사고의 수습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진흙탕에 범벅이 된 이불을 빨고 있는 주민들에게 그래도 우수저류시설이 있어서 피해를 줄였다고 항변하는 당국의 태도는 정말로 무책임하다. 물난리가 난 후에야 뒤늦게 호우경보를 내리고 국지성 호우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기상청의 태도와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큰 자연 재해 없이 살아왔는데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와서 오히려 더 큰 수해를 당한 데에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무분별한 개발행위도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산자락이 잘려나가야 하고 농토가 메워져 포장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생산성과 편리성 측면에서 불가피한 이유도 있겠지만, 국토를 개발하되 주민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여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한 번 훼손하기는 쉬워도 다시 돌려놓기 어려운 게 자연이다. 수해를 막기 위한 우수저류시설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 흐름의 순리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
 본디의 모습과 기능을 잃어가는 금수강산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먼저 각종 개발행위의 허가와 관리 감독을 관장하는 당국을 원망하게 된다. 누구나가 언뜻 보아도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더없이 아름다울 산자락 위를 중장비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 관청에서는 저런 행위를 분별없이 허가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강토의 괴손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많은 지역이 연쇄적으로 수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 터전인 소중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하여 가능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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