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책 한권 (1) - 직지

‘잊을 수 없는 책 한권’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선정된 ‘직지’의 뜻을 함께 살펴보기 위한 좌담회가 지난 5월 29일 동양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용환 충북대 교수, 조성택(경기도 연천교육청 장학사) 박사,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나기정 전 청주시장,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동양포럼) 동양포럼(운영위원장 유성종)은 청주 흥덕사지에서 찍어낸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잊을 수 없는 책 한권’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선정, 그 뜻을 함께 살펴보기 위해 지난 5월 29일 동양일보 회의실에서 좌담을 열었다. 이날 좌담에는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나기정 전 청주시장, 김용환 충북대 교수, 조성택(경기도 연천교육청 장학사) 박사가 참석했다. 좌담회 내용을 요약·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청주에 돌아와서 청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문화 품목 중 하나로 직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일률적으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물체로만 이해하고 있어 실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금속활자로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서양사에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 금속활자를 통해 일부 귀족이나 종교지도자들의 독점물이었던 성서(聖書)가 그것을 통해서 대중화 민중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일부의 닫힌 종교적 신앙이라는 차원에서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신앙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갖는 문화사적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청주사람들은 단순히 그것의 제작 시기가 연대적으로 앞섰다는 데만 관심을 갖는 것은 그 가치를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 못 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김용환 교수가 들려준 한 젊은이가 활자로서의 직지가 아니라 그것으로 만든 책을 주제로 해서 박사논문을 썼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기뻤습니다. 청주에서 그런 시도가 이루어졌다면 청주에 애착을 갖고 청주를 귀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오늘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 논문을 쓴 분이 여기 있는 조성택 박사입니다.”

▷조성택(경기도 연천교육청 장학사) 박사 “오늘 발제를 위해 공부를 하면서 직지를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포럼을 개신(開新)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직지에는 무심(無心)의 사상이 녹아있습니다. 먼저 이 무심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것을 세계 시민성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발제의 포인트입니다. 백운 경한은 전라도 고부 출생으로 어려서 출가해 1년 여간 지공에게 법을 묻고 석우 청공에게 그 법을 전해 받았습니다. 공민왕 14년(1365) 나옹의 천거로 신광사 주지가 됐으며 동왕 17년에는 왕비 노국공주의 원당으로 세워진 홍성사 주지를 역임했습니다. 동왕 19년에 공부선의 시관을 맡을 때 시험방법으로서 화두와 수어 등의 여러 가지 중 무심과 무념이 가장 묘한 방편임을 강조했습니다. 동왕 21년 나이 75세에 성불산에 머물며 시자인 법린의 도움을 받아 저술에 몰두하였는데, 스승인 석옥으로부터 받은 ‘직지’ 한권을 바탕으로 제불의 법문과 여러 조사의 어록 등에서 요체를 가려 뽑아 재편성해 ‘백운 경한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 2권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백운 경한의 무심에 대해 김성수 교수는 ‘평상시의 일 없는 마음(平常心)’이며 ‘내려놓음’이면서 동시에 ‘깨달음의 성품’을 의미한다고 파악했습니다. 이는 곧 일상의 감각에 묶여 있는 주관적 자아의 폐쇄성에서 벗어나서 활달하게 이웃에게 다가서며 서로를 살리는 활심(活心)이자 열린 마음의 대화로서 진심을 토로하는 개심(開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심은 진심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없다고 하여 실제적인 존재와 대립되는 無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有는 無다 하는 이견(二見)이 이미 소멸된 용심(用心)의 자재성(自在性)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백운 경한의 무심선에서 무는 있다 없다 하는 차별적 단계의 무가 아니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무도 아닙니다. 모든 무는 집착심과 번뇌망상을 떠났다는 의미에서 무일 수 있지만, 온갖 아름다움과 깨끗함을 모두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보면 유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무심은 유와 무에 상통해 유이기도, 무이기도 하며,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입니다. 이는 자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더 이상 경계에 머물지 않고 서로가 자신의 마음을 함께 열어가서 도의 일체감으로 만나게 되는 상호주관성의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인간에게 있어 유심으로 인한 마음의 식민지화가 심화되고 결국 영혼까지 영토화하여 자유로운 영혼을 지켜가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심을 통한 탈식민지화를 통해 영혼의 자유를 회복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서둘러 이루어야 할 긴급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운 경한이 제작한 직지에는 선종(禪宗)의 전통적인 역사관부터 조사들의 선법과 5가 7종의 선풍을 망라한 수행방법과 대승교학적 이론 배경과 수행자의 일상적 규범에 이르기까지 성불의 길에 필요한 모든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선사상 및 그 수행법에 있어 다양성의 인정과 조화를 지향하는 찬술자의 의도가 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심선은 화두타파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전체를 훤히 드러나게 하여 자각하는 원리입니다. 그것은 자아를 비워가는 무념을 예비적 단계로 하고 자타가 함께 서로 대화하고 공동으로 노력하여 개신의 변화를 모색하는 본격적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직지는 인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금속활자본으로만 남으면 그것은 백운 경한선사가 이루고자 했던 무심의 경지가 아닌 유심으로 인한 또 다른 식민지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직지의 진정한 가치는 그 속에 담긴 컨텐츠를 이해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할 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직지’는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의 줄임말로서 현재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우왕 3년(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 2권이 ‘주자본’으로 간행되었고, 이듬해 ‘불조직지심체요절’과 ‘백운화상어록’이 목판본으로 간행됐습니다. 백운 경한(1299∼1374)은 태고 보우와 함께 석옥 청공 문하에서 임제종풍을 계승했습니다. 태고 보우 왕사는 원나라에 들어가 ‘조주의 무자’ 화두를 깨달은 후 석옥 청공을 만나 ‘태고암가’를 올렸고, 깨달은 바를 모두 내려놓으라는 석옥 청공의 주문에 일언지하에 모두 버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태고 보우는 평생 간화선을 탐구한데 반해, 백운화상은 석옥 문하에서 만상이 인연소기에 의해 드러나는 공(空)의 무심무념 묘도를 깨친 후 평생을 무심선을 선양했습니다. 백운화상은 1351년, 석옥 청공으로부터 직지 1권을 전수받았고, 1352년 무심무념의 진종을 체득했습니다. 그의 나이 75세 되던 1372년 9월 성불산에 기거하면서 직지 2권을 저술했습니다.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긴요한 것을 편찬해 154가(家) 298편을 수록하고 과거 7불, 인도 고승 28가, 중국 고승 118가, 신라 대령선사로 구성했습니다. 백운화상은 1372년 제자 법린과 함께 직지를 완성하고 1374년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했습니다. 입적한 3년 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제자 석찬과 달심이 주관하고 비구니 묘덕의 시주에 의해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간행됐습니다. 백운화상이 무심을 깨달은 계기는 이와 같습니다. 계사(癸巳·1353)년 1월 17일 낮, 고요히 좌선(端坐)하던 중, 영가대사(永嘉大師)의 <증도가(證道歌)>에 “망상(妄想)을 없애지도 말고 참(眞)을 구하지도 말라. 무명(無明)의 실제 성품이 불성(佛性)이요 ‘환영으로 나타난 비어있는 몸(幻化空身)’이 바로 법신(法身)이다”는 구절에서, 그 말을 깊이 음미하던 중에 홀연히 바로 무심(無心)에 들었다고 합니다. “한 생각(一念)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 사이가 끊어지면서 전혀 기댈 곳이 없어지자 그윽하고 ‘깊숙한(冥然)’ 무심경지에 마침내 이르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삼천대천세계가 온통 ‘한’일 뿐, ‘몸과 마음은 상통함(身心一如)’으로 말미암아 몸밖에 따로 산하대지(山河大地), ‘밝고 어두움(明暗)’, ‘현상과 비어있음(色空)’, ‘범속과 거룩함(凡聖)’이 있지 않다는 평범함을 자각했다. 몸과 마음이 내려앉자 저절로 평등해지고, 그 평등이 뚜렷한 밝음(圓明)과 혼연일체를 이루니, 무심이 작용하면서 전체가 현성(現成)하여 정수리로부터 발바닥까지 꿰뚫었으며, ‘과거와 현재(古今)’를 동시에 벗어나게 됐다. 본래부터 움직이는 바가 없던 것이며, 지금에 와서 비로소 적멸(寂滅)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평등하고 평등해서 애초부터 그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음이었다. 감각(根)과 티끌(塵)을 멀리 벗어났으며, 안팎에 있지도 중간에 있지도 않아 그 바탕이 참되고 영원(眞常)을 드러내기에, 심히 고요(湛然凝寂)하고 그 묘한 작용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恒河沙)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卷下)는 것입니다.”

▷김 주간 “두 분이 ‘직지’라는 책의 내용을 말씀해 주셨고, 특히 ‘무심’이라는 백운선사의 사상을 적출해주셨는데, 저 자신의 관심은 백운 경한의 무심을 오늘과 내일의 의미로 새밝힘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21세기의 청주상(淸州像)에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알다시피 청주는 금속활자본이 간행된 곳입니다. 백운선사가 청주 사람도 아니고 거기에 담긴 내용이 특별히 청주와 관련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책이 1377년에 청주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간행됐다는 것이 청주와의 인연입니다. 저는 ‘청주의 얼’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것은 청주의 가시적인 물체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사상적·철학적 자리매김과 뜻매김에서 청주에 대한 저 스스로의 애착과 향수를 그리고픈 것입니다. 저는 청주를 생각할 때마다 두 가지가 언제 어디서나 떠오릅니다. 그중 하나가 무심천으로 상징되는 무심(無心)과 충북대의 건학정신인 개신(開新)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펼쳤던 공공(公共)하는 대화 운동은 모두 개신을 위한 만남이요 대화요 공동(共働)이었습니다. 결국 새 길을 여는 것이 저의 철학적 노력의 바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의 원점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색 끝에 문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무심(無心)이었습니다. 제가 ‘직지’를 읽고 저 나름으로 깨달은 것은 무심이란 마음이 없는 상태도 아니고, 빈마음도 아니고, 마음의 차원을 넘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차원을 넘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과 방치하는 마음 등등 한없이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가닥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서 너와 나와 그와 그녀가 함께·더불어·서로 살리고 사는 새로운 차원·지평·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심개신’이라 말하고 청주 얼의 뜻매김을 ‘무심개신’과 ‘미래공창(未來共創)’의 인문학을 일으키고 키우는 도시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서 인문학은 과거의 생각처럼 문학과 역사와 철학-줄여서 말했던 ‘문사철’-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인문학은 인간의 영혼을 일체의 도그마-종교적·정치적·문화적-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영혼을 낳고 키우고 자라게 하는 다차원적인 인간적 영위(營爲)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적 영위를 통해서 지방간·남녀간·세대간 상생(相生)·상존(相尊)·공복(共福)을 함께 실현하려는 대화(對話)·공동(共働)·개신(開新)이 늘 살아 있는 도시 청주를 애지중지하는 것입니다.”

▷나기정 전 청주시장 “지금까지 직지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조명됐습니다. 이 금속활자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보혁명의 가장 중요한 것이 금속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주사람들이 세계에 내보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지 관련 사업을 여러 가지 펼쳐 왔습니다만, 항상 생각했던 것이 서양의 구텐베르크가 성서를 금속활자로 찍어냄으로써 서양 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면, 직지는 동양사상이나 한국의 사상을 어떻게 발현시켰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우리의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직지가 담고 있는 불교 사상이 한국인과 동양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지를 비단 최고의 금속활자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앞으로는 그것이 안고 있는 사상적 의미를 밝히는 사업도 진행돼야 합니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 “조 박사님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직지’라는 용어를 고유명사로 보시는지, 아니면 보통명사가 고유명사화된 것이라고 하시는지요. 직지라는 용어는 청주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기독교에서도 썼습니다. 충남의 어떤 가톨릭성지에 가면 전시물 중 직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뜻의 ‘직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지라는 용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이것을 써야 하느냐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26자라는 알파벳으로 구성된 것으로 세계 전파에 가장 용이하고 유효했습니다. 그러나 직지는 가장 어렵다는 한자로 돼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문헌 사이에는 대중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직지의 가치를 제대로 풀이하고 펴는 일은 서지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조 박사  “박사 학위 논문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직지를 단순히 금속활자본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만 따져서는 청주가 세계로 나가기에 제약이 많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무심을 교육적 차원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야 청주가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활심(活心)이라는 것은 감각에 묶여 있는 폐쇄성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사람들은 사심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내 자식만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대한민국 교육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청주는 무심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교육적 차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유 위원장 “직지의 서지학적 의미를 알리려는 시도는 약 17년 전에 나 시장님이 ‘세계인쇄출판국제박람회’로 시작했습니다. 그때 구텐베르크 중심으로 돼 있는 세계문화사를 바로하기 위해 7개 외국어로 직지를 번역해 세계에 뿌리자라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단한 번역 사업조차 안됐습니다. 우리는 그런 기초적인 사업조차 못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청주가 직지를 입으로는 강조하지만 정작 중요한 직지의 의미, 부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김 주간 “시민이 각성해야 합니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직지를 세계시민이 공감 공유할 수 있는 공통가치를 지닌 역사적 보화로 키워야 합니다. 이 생각을 시민운동으로까지 발전시켜야 합니다. 불교 용어는 현대감각에 맞게 새로 번역하고, 불교 경전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로 탈바꿈시켜야 세계최고의 문헌으로 출판했던 독지가들의 뜻이 살려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라는 방식을 탈바꿈시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나 시장 “직지가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후 직지상이 제정돼 기록유산 보존에 관한 유공자, 기관단체, 개인에게 상을 주고 있습니다. 세계 기록 유산을 보존하는 세계적인 사업을 청주가 주도하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시상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직지와 연관된 사업으로 직지를 세계에 보급하기 위한 것인데 참 힘들었습니다. 직지의 7개 국어 번역사업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실 시민들은 직지라고 하면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왜 중요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게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직지가 왜 중요하고 직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리는 것 말입니다. 설사 방법이 있더라도 실행하기 참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중요합니다.”

▷김 주간 “그 동안 직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여러 모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청주라는 곳이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어떤 확고한 지역 아이덴티티가 없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직지’가 다른 곳이 아닌 청주에서 청주 사람에 의해서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역사적 사실에서 세 가지 뜻을 되새김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직지’가 해명하는 ‘무심’은 다른 데에서도 많이 논의되었지만, 그것이 ‘개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상적 철학적 연관형성의 지방적 근거는 청주에서밖에는 찾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심천과 개신동이라는 지역적 상징자원이 갖추어진 곳이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무심개신의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실천적 대화운동을 일으켜보겠다는 뜻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곳이 다름이 아닌 청주에서만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청주를 무심개신의 인문학의 산지(産地)로 자리매김하고, 거기서 한중일(韓中日)이 함께 열어가는 미래공창의 창발(創發)로 뜻매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쁜 시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 박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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