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시인)

▲ 나기황(시인)

요즘처럼 ‘사과(謝過)’가 풍년인 때도 드물다.
“차렷! 국민에 대하여 경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의 구령에 맞춰 ‘SNS 댓글삭제사건’ 당사자인 경찰청장, 경찰학교장과 함께 경찰수뇌부가 고개를 숙였다.
‘살충제 달걀파동’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식약처장, 대한양계협회장이 줄줄이 공개사과를 했다. 문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국민께 불안과 염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사과했고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지난 8일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지난 16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늦게나마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하고 그들을 위로 했다.
‘사과(謝過)’도 철이 있는지 최근 들어 사과나무에 사과 열리듯 ‘사과(apology)’가 지천이다.
‘물난리 속 유럽연수’를 떠난 도의원들이 구설수에 올라 징계를 당하고 결국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시작 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국민의 당에서 이른바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찬주 합참의장부부가 공관 병들에게 저지른 ‘갑질논란’이 사회적 공분을 샀고, 사과태도에 대한 비판도 뒤따랐다. ‘미스터피자’의 정우현 전 회장이 '가맹점 갑질 논란'에 대해 사과했고, 잘나가던 ‘총각네 야채가게’의 이영석 대표가 가맹점 업주에게 한 부당행위로 해서 프랜차이즈업계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주식투자로 400억을 벌었다는, 거액의 기부자로 화제가 된 ‘청년 버핏’ 박철상 씨가 자신의 정보를 가리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의 글을 올렸다.

사과가 넘쳐나는 요즘의 사회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걸핏하면 “사과하라, 사과하라”고 종주먹을 대는 모습도 보기에 안 좋지만, 등 떠밀려 사과를 해도 ‘사과(apology)’가 아닌 변명일색으로 면피를 하려는 모습은 더 더욱 한심하다.
‘사과(謝過)’를 풀어보면 '사(謝)‘는 본래 ’면하다, 끝내다’이고, ‘과(過)’는 ‘지난 잘못’을 의미하고 있으니, 사과란 결국 ‘지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으로서 새롭게 고쳐나가려는 것이니 ‘단죄’보다는 ‘개선’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 것 같다.
작가 이기주는 그의 저서 <언어의 온도>에서 ‘언어에도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사과를 뜻하는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란 뜻이 담겨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과(apology)’는 얽힌 일을 풀어내고 개선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가진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승리의 언어‘라고 말한다.

<쿨하게 사과하라-정재승.김호 지음>에서 올바른 사과에 대한 팁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잘못된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미안해’가 우선이며 그것으로 매듭을 묶어야 한다. 거기에 ‘하지만’같은 불순물이 들어가는 순간 그 사과는 ‘변명’이 되고 만다.
둘째, 일어난 과오나 잘못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 내 잘못이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정답이다. ‘본의 아니게 실수가 있었습니다’와 같은 3인칭 화법은 책임전가나 책임회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셋째, ‘만약, 했더라면’같은 가정법도 피해야 한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사과할게” 라는 식이면 역효과를 불러오기 쉽다.
넷째, 사과하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는 견해가 다수 의견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사과(謝過)’가 아무리 풍년이라도,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라면, 낙과(落果)만 널려있는 ‘사과밭(果田)’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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