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 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한국갤럽은 지난 16,17일 이틀 동안, 뉴스를 제외한 프로그램 중 ‘한국인이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선호도 5위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2012년 첫 방송을 시작한지 5주년을 맞은 ‘나는 자연인이다’는 오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들의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의 로망을 불러일으키며, 비록 눈으로나마 자연 속에서 쉬고 싶다는 힐링의 욕구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프로를 처음 보았을 때는 ‘아, 저런 삶도 있구나’하는 호기심이 더 컸지만, 몇 번 보다보니 꾸미지 않은 자연인들의 생활모습에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자연인’이라는 호칭이 궁금하다.
‘자연인’이란 누구인가. 산 속이나 섬 등 오지에서 문명을 떠난 삶을 살면 자연인일까. 그리고 그들을 자연인으로 부른다면 그 반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라고 부를까.
자연인(自然人)의 사전상 의미는 ①사회나 문화 따위에 속박되거나 운영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 ②법률적인 의미로서, 출생에서 사망까지 권리나 의무의 주체로서 그 능력과 권리를 인정받고 있는 개인을 이른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이 의미하는 자연인이란 사회나 문화 따위에 속박되거나 운영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말하는 것일 터.
갑자기 얼마 전 제천의 한 마을을 발칵 뒤집었던 누드펜션의 누드인들이 생각났다. 마을 사람들이 연일 시위를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시끄러워지자 결국 펜션을 팔고 떠난 그들은 자연인일까 아닐까.
누드펜션이 화제가 된 것은 누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이다. 하긴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던 주민들이 어느 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성인 남녀가 무리 지어 숲을 거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제천의 펜션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국의 누드 비치’ 탄생을 꿈꾸는 자연주의 동호회 회원들이라고 한다.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회원들끼리 모여서 나체로 수영이나 배드민턴 등 운동과 게임을 즐기고자 했는데 주위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떠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성(性)적 쾌락'이 아니라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녀가 나체로 함께 지내지만 성행위나 성행위 유사 행동을 하면 강제 퇴소를 당하는 등 나름대로 엄격한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생활, 이것은 자연주의일까. 어떻게 보면 태어난 그대로 알몸으로 살면서 자연과 동화되고자 하는 나체주의자들이 더 자연인이지 않을까. 원래 나체주의는 일조량이 적었던 19세기 독일에서 태동했다. 햇빛이 좋은 날이면 옷을 벗고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다가 나체주의자들이 모이는 공원이 생겼고 나체 수영축제가 시작됐다. 
지식인들 중에서도 나체주의자는 꽤 여럿이 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문학가인 토마스 카알라일은 “대자연이 신의 의복이다”라며 사람이 의복을 입지 않을 때 더 건강하고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명 작가인 월트 휘트먼도 평소 옷을 입지 않고 한적한 시골이나 해변가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자연인의 삶을 추구하며 집 앞 호수에서 나체 수영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재미있는 누드 문화행사도 있다. 호주 시드니 국립미술관은 2012년부터 나체로 명작들을 둘러보는 투어를 진행하는데, 매년 매진 행렬이라고 한다. 이 투어는 관람객은 물론 큐레이터 경비요원까지도 모두 나체로 참여해 특별한 문화적 충격을 나눈다고 한다. 이런 나체주의자들은 나체문화를 외설로 보는 것에 대해 제일 분개한다.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은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이런 행사는 상상도 할 수 없고, 그저 ‘나체’라는 단어 자체도 입에 올리기 민망한 사회 분위기지만, 우리가 오지로 들어가서 자연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자연인’이라 부른다면, 격식과 의복 등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나체주의자들 역시 우리가 느끼는 혐오감과는 별개로 ‘자연인’이요, 그들의 삶 또한 ‘자연주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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