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숙 <대전시민대학 강사>

“여자가 출가 전에는 아버지를, 출가한 후에는 지아비를 따르고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것을 아느냐?”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 진성대군과 혼례를 올린 신채경에게 대군의 생모인 대비가 말한 대사다.

가사를 분담하는 것도 모자라 남자들이 전담을 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공동육아를 외치는 요즘 젊은 부인들에게는 참으로 황당할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만큼을 살아오다 보니 아버지, 남편, 아들이라는 남자들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나에게는 한 남자가 추가로 들어오는데 그 분은 바로 내 시아버님이시다.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내 인생의 남자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는 우리 아버지.

3대 독자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온갖 호사를 다 누리며 사셨던 분이다. 지난해 1월 돌아가실 때까지 주변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팔자가 제일 좋은 양반’이라고들 하셨다. 시골에 사시면서 지게 한 번 안 져보셨다고 하니 그 호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대전으로 유학 온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고 교복을 맞출 때, 입학식, 자취방 얻을 때, 졸업식 때에도 늘 내 옆에는 엄마가 아닌 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1990년도 결혼하기 전 내 마지막 생일에 사 주셨던 ‘왕 족발’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단골메뉴다.

두 번째는 시아버님.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찡한 분이시다. 호랑이처럼 무섭고 당신 생각만이 옳았던 독불장군 이셨지만 유일하게 나에게만큼은 관대하셨던 분이다. 건강을 자신하셨는데 갑자기 온 급성신부전증으로 74세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세 번째는 내 남편.

집에서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은 숟가락 떠 넣는 일과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뒤처리 하는 일 딱 두 가지인 요즘 말로 하면 간이 큰 남자이다. 지금까지 쓰레기봉투 한번 안 만져보고 집안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도통 관심이 없지만 아내 사랑만큼은 자기가 최고라고 항변하는 내 남편.

마지막 남자 내 아들.

취업 준비를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요즘이다. 조만간 훨훨 자신의 꿈을 펼칠 날을 기원하며 우리 아들의 엄마인 것에 감사한다.

내 인생에서 어디까지가 아버지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남편의 영역인지는 모른다. 우리 아버지의 삶에 시아버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 남편과의 사랑 등이 겹쳐져 더 두터워지는 내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얇은 한 편의 인생이 아닌 겹치고 쌓인다면 아들을 따르는 날의 내 인생은 어느 풍파에도 끄떡없는 단단함이 스며있지 않을까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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