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책 한권 (2) - 태교신기(胎敎新記)

‘잊을 수 없는 책 한권’ 시리즈의 두 번째 순서로 선정된 ‘태교신기’의 뜻을 함께 살펴보기 위한 좌담회가 지난 5월 4일 충북예총회관 따비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김용환 충북대 교수, 김양식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원, 문희순 문학박사.


동양포럼(운영위원장 유성종)은 ‘잊을 수 없는 책 한권’ 시리즈의 두 번째 순서로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선정, 그 뜻을 함께 살펴보기 위한 좌담회를 지난 5월 4일 충북예총회관 따비홀에서 열었다. 이날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김용환 충북대 교수, 김양식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원, 문희순 문학박사가 함께한 좌담회의 내용을 요약·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태교신기(胎敎新記)는 청주 출신의 사주당이씨(1739~1821)가 1남 3녀 4남매를 키우는 과정 속 자신이 겪은 임신·육아의 경험과 경서 및 의서 등에 기초해 저술 한 것이다. 태교의 이치와 태교 지침, 태교의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책 한권 시리즈’의 두 번째 순서로 청주가 낳은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바로 저 자신이 그것을 읽고 나서 이 고장 출신의 여성실학자가 제시한 생명·여성·미래라는 가치를 통해 경기도 용인시와 충북 청주시 사이의 ‘지방간 상생’과 새 생명을 낳고 기르고 사람답게 하는 데서 미래의 가치공유를 이어주는 ‘남(=남편)과 여(=아내) 사이의 상생’, 그리고 ‘어버이 세대 사이의 상생’으로 이어지는 삼차원 생명지평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해준 책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제대로 읽고, 알아서 널리 공감·공유의 유대를 널리 펼치고 싶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문희순 문학박사 “저는 태교신기를 읽으면서 이 책의 포인트는 딱 하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는 ‘명의는 병들기 전에 치료하듯이 생육도 이와 같아 낳기 전에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스승이 십 년을 잘 가르쳐도 어미가 열 달 뱃속에서 잘 가르침만 못하고, 어미가 열 달을 뱃속에서 가르침이 아비가 하룻밤 부부 교합할 때에 정심함만 못하니라.’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사자소학에는 ‘부생아신 모육오신(父生我身 母育吾身)’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태교신기를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태교신기에는 ‘서로 입에 담지 못할 말은 하지 마라’, ‘병이 있거나 상중에는 관계하지 말라’, ‘천기가 고르지 못할 때에도 관계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러한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혼수품으로 아이를 가져온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들이 나오곤 합니다. 이 말은 혼인 전에 성적 욕망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수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되었는데 사주당의 태교신기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10년보다 중요한 것이 어머니 뱃속에서의 열 달이고, 이보다 중요한 것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그 순간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태교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견해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사자소학에 나오는 ‘아버지가 나를 낳고 어머니가 기른다(父生我身 母育吾身)’는 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아이를 갖기 이전부터의 바른 마음이 좋은 아이, 바르고 훌륭한 사람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모서리에 앉지 말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부차적인 것일 뿐 태교신기의 진짜 핵심은 부모 되기 전 바른 음과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태교신기는 예기의 내용을 보완한 사주당 이씨(1739~1821)의 작품입니다. 태교신기는 태교의 중요성을 성리학적인 심성론과 교육론에 의거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태교신기에는 그 태교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행동의 지침들은 특정한 태교행동을 권장하거나 특정한 태교행동을 금하는 사항으로 나뉩니다. 임부주체의 태교행동, 임부의 마음가짐, 임부의 언어 그리고 임부의 금기사항과 권장사항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한 마음먹기(存心)’가 주목할 만합니다. 공경의 마음을 가져서 나쁜 의도나 생각의 싹을 뽑아 버리는 것이 임부에게 어려운 일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경한 마음을 먹은 결과로 망령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원망을 품은 안색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주당은 특히 ‘태(胎)’는 천지의 시발이요, 음양의 근본이며, 조화의 원동력으로 만물을 담는 그릇이며 음양이 화하고 혼돈하여 지각이 없을 때, 태교를 시행할 수 있으니 은연히 돕는 공은 사람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는 기질지성의 바탕으로 교육은 이에 비하면 말단의 위치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모든 교육적 노력은 10개월 동안의 태교에 비하면 모두 말단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주당은 태교효과는 효자를 얻는 데 있다고 말하며, 태교를 하지 않으면 불효자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요즘 효자가 없는 것은 태교를 아니 한 결과일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태교를 하면 군자의 가능성을 가진 자식을 얻는다고도 했습니다. 사주당은 태교전통이 주나라 말에 그쳤다고 보고 태교 인식이 당시 사람들에게 거의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비록 사주당은 문자를 통한 것이지만, 임부가 정성을 다하여 구하면, 당장에 바른 마음을 바로 얻지는 못하여도 언젠가는 도달하리라고 예견하면서 태교실시를 권하였습니다.”

▷김양식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원 “저는 태교신기가 만들어진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사주당이 몸으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4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에 기존의 태교과정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이 태교신기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문 박사와 김 교수님의 키워드는 바로 ‘생명’인 것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생명에 대해 어떻게 철학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태교신기의 본원적 가치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깊이까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김용환 교수님께서 태아는 ‘군자의 씨앗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성리학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우주의 씨는 태극입니다. 그래서 태극이 갖는 태가 우주 만물의 씨앗이고 그것으로부터 만물이 형성이 되는데 씨앗 중에 가장 성스럽고 훌륭한 것이 인간의 씨앗이고 그 씨앗 역할을 하는 것이 태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태가 단순한 태, 아이를 낳는 씨가 아니라 결국 우주의 생명이 한 인간 안에 내재되는 하나의 과정이고 태교가 그것이 발현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철학적 지점을 밟아나가면 철학적 생명관, 우주관속에서 태교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부가 만나고, 임신하고, 태교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우주적인 과정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주당이 외형적 태교보다 내면적 태교를 강조했던 것도 태교라는 것이 단순하게 아이를 잘 낳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우주의 질서와 품성을 담아내는, 군자의 씨앗을 심는 과정이기 때문에 내면의 바른 자세, 바른 마음가짐을 강조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단순하게 태교신기를 태교의 방법론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우주관, 생명관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낳으면 ‘한 살’이라고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유식한 척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거의 ‘몇 개월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어른들이 ‘백일잔치’를 챙겼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합니다. 백일이라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 수태될 때부터, 생명이 시작되고 만 1년이 된 날입니다. 우리는 배안의 생명나이를 쳐서, 낳으면 한 살이 되는 것인데, 이것을 비과학적이라 하고 ‘만(滿)’으로 따져야 배운 여자라고 알고 있으니 참으로 누가 더 생명을 존중하고, 과학적인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사주당이 이야기하고 있는 태교의 그 근본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선조들은 지키고 이어왔는데 현대교육은 오히려 이 좋은 것을 내팽겨 둔 채 외국 것만 무작정 따르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김 연구원 “기존에는 인간의 기질이나 품성은 출산 이후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야기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수태를 한 후 3개월 정도가 되면 이미 기질이나 품성이 형성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10개월 이내에 태중에서 아이의 기질이라든가, 품성이라든가 쉽게 말해 인간으로서의 그릇이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특히 태중의 아이가 무엇을 들었느냐, 어떤 말을 많이 들었느냐, 부모가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그 아이의 기본적인 습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뱃속에서 나왔느냐,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가 결국 그 아이의 감정을 지배하는 원천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과학을 통해서도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오히려 어르신들을 상대로 태교의 교육을 실시해서 혼인을 앞둔 자식들에 대한 태교의 교육이 이뤄지는 그러한 태교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미 사주당 이씨는 남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글을 몰랐으니까 남편들이 부인들에게 태교 방법을 알려주고 같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태교가 단순히 임산부만의 과제가 아닌, 10개월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의 평생 과제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평생태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박사 “그렇게 따지면 이 태교신기는 비단 임신을 앞둔 부부에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부터 시작해서 직접 출산을 맞닥뜨린 신혼부부들, 혼인을 앞두고 있는 자녀를 둔 어른들까지 공부해볼 필요성이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생명관에는 물학(物學)적인 생명관과 심학(心學)적인 생명관, 생학(生學)적인 생명관이 있습니다. 물학적인 생명관은 130억년 전에 빅뱅이 일어나 지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탄생했고, 생명의 탄생은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약 30억년에서 35억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림잡아 약 100억년 동안은 오로지 물질만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긴 물질·물체·무기물의 세계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가? 물질과 생명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캐보는 것이 물학적 생명론이며, 거기서 얻어지는 생명이해가 물학적 생명관의 내용이 되겠지요. 생명의 출처는 물질이지만 물질이 곧 생명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생명에서 마음이 언제쯤 탄생했고, 생명과 마음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심학적 생명론이고 거기서 생성된 생명이해가 심학적 생명관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다운 마음은 약 5000여년 전에서 2000년전으로 보는 견해가 주도적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있다고 반드시 마음이 따른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과 마음이 있어야 생명이 생명다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갈라져 있어온 것이 심학적 생명이해의 기초입니다. 다음에 제기된 중요한 문제는 생명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생명과학적 인식론과 생명을 주체적으로 자각하려는 생명철학적 자각(각성·체인)론 사이의 대립·갈등·논쟁입니다. 생명과학적 인식론은 생명을 ‘물(物=대상·객체·실체)’로써 관찰·분석·조작(操作)’하려는 것이고, 생명철학적 자각론은 생명을 ‘사(事=주체적으로 자각·각성·체인하는 사건·사태·동태)’로 체득하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처럼 1800년대의 여성이 이 생명의 자각을 저서로 남겨 놓은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생명을 대상으로 인식한 저서들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자각을 글로써 풀이한 경우는 없다는 말입니다. 태교신기를 읽으면서 저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비주자학적이고, 비성리학적인 사고의 씨앗이 더 뚜렷하게 싹트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청주가 다른 도시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선 여성·생명·미래를 내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문 박사의 의견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사주당 이씨를 부각시킴으로써 청주의 인문학적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무극에서 태극과 음양이 나오는 과정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세상에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어떤 한 덩어리 물질과 에너지가 융합된 아주 작은 알갱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무극’입니다. 한순간의 대폭발로 온 우주가 탄생했다고 하는 ‘빅뱅’의 제로 포인트가 바로 ‘무극’인 것입니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고 하는 것이 바로 무극에서 태극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무극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바로 생명은 ‘태극’이고 태극에서 음양이 생기는 과정이 생명의 태생에 대한 물학적 생면=역학적 생명이 아닐까 하는 것이 ‘태교신기’에서 읽을 수 있는 생명이해의 핵심입니다. 개체생명은 아버지라는 ‘양’ 생명과 어머니라는 ‘음’ 생명이 만나 탄생한다는 것인데 우주생명이 개체생명으로 변하는 과정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체생명은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양과 음의 만남이 이뤄져야 합니다. 우주생명의 경우에는 무극에서 태극으로 이어져 나가는데 이는 자생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개체생명은 아버지의 양 생명과 어머니의 음 생명이라는 자각된 생명끼리 만나게 됩니다. 우주생명처럼 자생할 수 없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양 생명과 어머니의 음 생명이 만나 새로운 생명이 나온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1900년대 서양의 인물인 한나 아렌트, 임마누엘 레비나스라는 사람보다 사주당 이씨는 어림잡아 200년 정도 앞서 이러한 고민을 한 것입니다. 타자와의 만남의 중요성-없어서는 안 될 계기라는 점에서-에 대한 각성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다른 존재와 다르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의 새로운 시작은 새 생명의 탄생을 말합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능력은 짐승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경우는 본능적인 것입니다. 본능적인 번식욕구라는 말입니다. 짐승의 본능과 다르게 인간은 새 생명의 탄생을 자각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생명을 시작함으로써 미래를 향하여 성장·성숙·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여자는 신체적으로 새로운 것을 잉태하고, 남자는 정신적으로 수태한다고 했습니다. 정신적인 수태, 정신적으로 새로운 것을 낳는다는 말은 바로 ‘개념’을 뜻합니다. 남자는 머리로 새로운 것을 수태하고 여자는 몸으로 새로운 것을 잉태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미래가 새롭게 열린다는 것이지요.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물적인 측면에서 보면 게놈, 유전자, 생명원체가 됩니다. 그러나 동양적인 관점에서는 양과 음의 화합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원인, 출발입니다. 화합을 통해서 하나가 될 때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니까 남자가 낳고 여자가 기른다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낳고 기르는 일입니다. 미래를 열어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는 바로 새로운 생명의 새로운 탄생으로부터 열리지 않습니까? 남자든 여자든 함께 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바로 태교신기 안에 담겨있고, 그것은 다름 아닌 미래공창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생명을 대상화하고 그 것을 객관적으로 관찰·분석· 종합하는 식으로 인식하는 단계를 거쳐서 주체적으로 생명을 자각하는 단계로 진화됨으로써, 생각적(生覺的) 생명론과 생학적 자각·각성·체득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말의 ‘사람’(人間)이란 ‘삶’(생명 生命·생활 生活·생업 生業)과 ‘앎’(지각 知覺·각성 覺醒·체인 體認)의 합성어로서 생명을 자각하는 존재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으며, 그 말이 생학적 생명관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데서 아주 놀라운 것은 어림잡아 200여년전, 그러니까 1800년대의 청주출신 여성실학자가 저술한 ‘태교신기’ 속에는 물학적·심학적·생학적 생명론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 박사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엄마로서 아이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자꾸 과거에만 묶어두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업보 같은 것을 아이에게 뒤집어씌우는 많은 과오를 대부분의 부모들이 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남편이나 제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아픔을 자꾸 아이에게 강요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종종하곤 했는데 태교신기를 통하면 아이가 과거를 벗어나 미래를 향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연구원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저는 역사문화와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주로 연구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토론이 어떤 두 가지의 담론을 제기해줬습니다. 과거에서 미래의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역사학자들의 병폐가 어찌 보면 과거에 매몰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뛰어넘어 미래적인 관점에서 ‘활사개공’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역의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대체로 복고적입니다. 과거 지향적이구요. 역사적인 가치를 주로 논해왔는데 오늘처럼 과거의 지역 인물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철학적인 접근을 하다 보니 인물이 갖고 있는 가치가 더 확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책이란 읽는 이에 따라서 그 가치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합니다.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는 작은 책이지만 저는 거기서 새로운 생명자각을 체험할 수 있었고 태교신기야말로 고품질의 미래 공동학습이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으며 새 생명을 낳고 기르고 생명의 충실도를 높이고 깊게 하고 널리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데 여성(=어머니)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체인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의 탄생에는 물질세계에서 남성에너지와 여성에너지의 상극(相剋)·상화(相和)·상생(相生)의 어우러짐이 제대로 어우러질 때 기적적으로 발생하는 커다란 변화(=개벽(開闢))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탄생한 새 생명의 미래는 어버이의 꾸준하고 정성스런 사랑과 보호와 배려에 의해서 열어진다는 것, 저 혼자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더불어·서로서로 열어가야 한다는 것 등 정말로 값진 생명지(生命知)·체험지(體驗知)·생활실천지(生活實踐知)가 농축되어 있다는 것이 독후의 실감입니다. 오늘 태교신기를 놓고 함께 생각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박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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