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살충제 계란 파동에 이어 생리대 부작용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이른바 화학물질 공포증을 일컫는 ‘케미포미아’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 불안감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 제조사 5곳을 대상으로 현장조사에 나섰지만 논란의 핵심인 VOCs의 인체 유해성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내년에나 난다니 분통이 터질 일이다.
생리대 부작용 논란은 이제 불안감을 넘어 공포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생리대에서 검출된 특정 물질이 여성 생식기종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논문이 한 편도 없다니 개탄할 일이다.
식약처는 논란이 일자 생리대 제조사 5곳을 찾아 지난 24일 현장조사를 벌였다. 최근 부작용 논란이 일고 있는 깨끗한 나라의 생리대 ‘릴리안’에 대한 품질검사에 들어간 지 사흘 만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와 주요 편의점들은 릴리안 생리대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깨끗한 나라도 28일부터 릴리안 생리대 전 제품에 대해 개봉 및 영수증 보유 여부, 구매 시기와 관계없이 환불해주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선 릴리안 생리대를 쓰고 나서 ‘유산했다’, ‘생리불순이 생겼다’, ‘생리통이 심해졌다’ 와 같은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릴리안의 실제 인체 유해성 여부는 식약처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각에선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013년 출시된 릴리안의 시장 점유율은 20% 정도로 유한킴벌리, LG유니참 제품에 이어 3위다. 릴리안의 부작용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최근이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3월 국내산 생리대 10종에서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고, 이 중에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도 있었다고 발표했다.
페인트나 접착제 등에 함유된 VOCs는 끓는점이 낮아 대기 중으로 쉽게 증발하는 액체 또는 기체상 화합물로, 전문가들로부터 ‘생리대 부작용’의 원인으로 의심받는 물질이다. 릴리안 제품에서 가장 많이 검출됐다는 대학 연구팀의 분석 결과도 있다. 깨끗한 나라는 릴리안이 식약처의 검사를 통과한 안전제품이란 점을 강조하면서도 소비자원에 안전성 검사를 정식 요청했고, 식약처는 품질검사에 착수했다.
생리대 부작용으로 촉발된 소비자 불안감은 생리대뿐만 아니라 기저귀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릴리안 생리대를 만드는 곳에서 기저귀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저귀는 영·유아들이 날마다 쓰기 때문에 엄마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해물질 VOCs는 생리대를 속옷에 고정하는 접착 부분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저귀에도 접착 부분이 있어 우려가 커지는 것 같다. 지난해에는 프랑스의 한 잡지가 피엔지 기저귀 ‘팸퍼스’의 일부 품목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보도하면서 안전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생리대 릴리안의 부작용 논란이 확산하면서 인터넷에선 피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식약처 등 관계 당국은 문제가 되는 생리대에 어떤 물질이 들어있는지, 그 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속하게 조사해 인체 유해 여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생리대 부작용 논란은 이제 불안감을 넘어 공포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생리대뿐 아니라 기저귀, 물휴지 등 소비자들이 불안해하는 생활용품의 화학물질 안전성도 전면 조사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갈팡질팡하다가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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