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충북지부장 서상국

(동양일보) 광복회 충북지부장으로서,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8월 29일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날은 바로 경술국치(庚戌國恥) 107주기이기 때문이다.
36년간 일제의 억압 속에서 갖은 고생을 하신 선조들을 생각하면 더 애잔하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8.15 광복절은 국경일(공휴일)로 제정되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라를 일본에게 어떻게 빼앗겼는지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알지 못하거나 극히 적은 사실만을 알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치욕의 역사이기에 기억하기 싫을 것이다. 그러나 뼈아픈 역사임에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고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중국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중국은 치욕의 역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대대적인 역사교육을 통해 국민들에게 세세히 알려주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중국은 1931년 9월 18일 심야에 일본 관동군이 선양의 남만주 철도를 파괴하고 만주를 침공하였던 날을 역사적 치욕으로 생각하고, 수도인 베이징을 비롯한 100여개 도시에서 오전 9시 18분에(9월 18일을 기억하기위해) 일제히 추모 사이렌을 울린다.
또 일본을 규탄하는 현수막과 오성홍기를 들고 중국국가를 부르면서 거리를 누비는 행사를 매년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였던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순종황제의 반대를 무시하고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한일합병조약’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우리민족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통과된 조약을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전격 공포하고 순종황제로 하여금 나라를 넘기는 조칙을 내리도록 했다.
8개 조항으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라고 명문화함으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이때부터 우리민족은 36년간의 혹독한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따라서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인 치욕이라는 뜻으로 ‘경술국치’라고 일컫는 것이다.
당시 그릇된 우리의 위정자들은 국세정세에 둔감하여 외세에 대한 대응 능력이 미숙했고 외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일제의 교활한 침략술책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지 못했다.
이는 오늘의 정치지도자들 또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고난과 시련의 일제강점기 근대역사는 오늘의 사는 우리에게는 뿌리이고 미래를 여는 희망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경술국치’일을 상기해야만 하는데 이는 다시는 이전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마음을 다지기 위함이다.
또 자주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우리 후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우리 모두 가슴 깊이 간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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