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 시인

약속
함기석

푸른 말이 끄는
푸른 마차를 타고
너에게로 간다
해를 싣고
달을 싣고
눈보라 치는 들을 지나
폭풍우 치는 밤을 지나
너에게로 간다
한 알만 떼어먹어도
육체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뽈랑 포도를 싣고
한 모금만 마셔도
영혼의 모든 상처가 아무는
뽈랑 샘물을 싣고
너에게로 가고 있으니
깊은 밤
장미로 변장한 죽음이 몰래
창가로 다가와
붉은 입술을 내밀어도
그 가시투성이 살갗에
입 맞추면 안 되오
약속해 주오

△시집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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