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교수) 8.15를 맞아 살인적 폭염혹서로부터 해방(?)되었다. 우주자연현상도 해마다 거의 동일양상이 반복된다. 더위는 양력 8.15를 정점으로 수그러든다. 9일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25일까지 거의 하루건너, 이삼일건너 비가 내렸다. 가을에 자리를 내주기가 서러워 그렇게 많이 울었나? 8.15 광복을 위해 항쟁분투했던 열기를 잊고 사는 것이 안타까워 그렇게 많이 울었나?

8월을 보내면서 생각해보자. 8.15가 해방인가? 독립인가? 광복인가? 우리 선열들은 무엇을 했는가? 어떻게해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우리는 무얼해야하는가.

첫째, 8.15는 실질적 직접적 결정적으로, 미 영 중에 의해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解放)된 것이다. 즉 1943년 11월 27일 연합국 측인 미국의 루스벨트, 중국의 장제스, 영국의 처칠 등의 대표들이 “한국민중의 노예상태에 유의해 적당한 절차를 밟아 한국을 자유독립시키기로 한다.”는 결의내용을 발표했다. 1945년 7월 26일 열린 포츠담회담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에 앞서 우리는 1907년 헤이그밀사파견, 1919년의 3.1운동, 만주에서의 무장 독립전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노력과 한국광복군의 결성, 연해주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우리민족의 강한 독립활동과 광복의지는 국제사회와 연합군측에 큰 감동과 자극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에게 광복이라는 필연의 선물을 주었다.

두 번째, 독립(獨立)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자립하겠다는 의미이다. 1919년 만주에서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을 조직하였다. 사령관은 홍범도(洪範圖), 부사령관은 주건(朱建), 참모장은 박경철(朴景哲)이었다. 이들은 조선총독부 산하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세 번째, 광복군을 보자, 1940년 9월 17일 임시 수도였던 중국의 충칭에서 임시정부주석 김구는 광복군선언문을 발표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이 되어 국내에 진입하지 못하고 1946년 6월 해체했다.

광복(光復)이라는 용어는 『주역』 「복괘(復卦)」에 들어있는 말이다. 즉 “그 도(道)를 반복하여 7일 만에 회복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라는 뜻이다. 순음지월(純陰之月)인 10월을 지나 하나의 양기(陽氣)가 아래에서 회복되는 것처럼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고 다시 국가재건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주역』에 나오는 문구를 통해 우리의 광복을 확신하고 적극 투쟁했으니 유학의 영향도 지대했다.

넷째, 위의 사람들보다 먼저 적극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 몇몇을 보자. 유인석(劉麟錫1842~1915)은 1902년경부터 북한 관서지방에서 학계(學契)와 서사(書社)를 통해 숭화의식(崇華意識)을 강조확산했다. 이는 항일의식을 제고확산하기 위한 선행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최익현(崔益鉉1833~1906) 1906년 1월 25일 전북 태인 무성서원에서 항일운동을 발기했다. 대마도로 잡혀가 옥중에서 단식자결했다. 두 사람 모두 70세가 넘어서 한 일들이다. 우리는 장수시대에 맞는 애국심을 발휘하자.

청주 낭성면 출신으로 김제환(金濟煥1867∼1916)은 일제의 민적부(民籍簿)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등 저항하다 1913년 옥고를 치렀다. 이에 일본의 한 신문은 “청주의 백이숙제”라고 예찬했다. 유인석, 최익현, 김제환은 존화양이, 위정척사정신을 항일운동으로 구현했다.

괴산 연풍면 ‘한지체험박물관’에서는 8월 1일부터 10월 9일까지 ‘광복 72주년기념 한지역사와 독립운동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이 기획전에 매우 주목할 그림들이 있다. 용, 김유신장군, 임경업장군을 그린 무신도(武臣圖)가 있다. 국가가 일제의 무력에 의해 지배당하자, 용처럼 전지전능하고 두 장군처럼 무력이 출중한 인물이 나타나 일제를 척결하고 나라를 되찾기를 바라는 열망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무속인들은 자신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의식을 확산계도했다. 이들은 진정 애국도인(愛國道人)이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경향각지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처지에 알맞게 일제에 항쟁했다. 독립, 해방, 광복은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다시는 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뜻을 담은 “독립 해방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초지일관 “독립 해방 광복”정신으로 무장하여, 대한민국을 영존만세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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