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란 시인

열쇠
최정란

몇 달이나 지났을까
철지나 옷장 속에 걸어둔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만져지는
열쇠 하나

얼음 얼고 눈 내리는 지난 계절 동안
무엇을 잠그고 잊혀졌을까
함부로 열어젖힌 시간을 반성하며
이 순간을 기다렸을까

닫힌 것들에 하나씩 열쇠를 넣어본다
작은 말다툼에 닫힌 전화번호에,
바쁘다 핑계에 못 만난 무심함에,
찬바람 휭 하게 돌아선 뒷모습에,

익지도 않은 청매실 눈 번히 뜨고
다 도둑맞은 뒤
겨우내 마음 닫았던 매화나무

누가 수천 개의 열쇠를 동시에 들이미는지
딸깍 딸깍, 매화꽃 열리는 소리,
환하다

△시집 ‘새로운 감성과 지성’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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