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흔히 40-50대 중년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샌드위치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노년기의 부모와 아동기 혹은 청소년기의 자녀들 사이에 끼어있으며, 양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의무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발연대인 60-70년대에 초ㆍ중ㆍ고를 다니며 가난이 무엇인지를 몸소 체험했고, 정치적 격동기에 대학을 다녀서 현실의 모순에 대해 비판의식이 강하며 현재 우리사회의 중추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가난에 찌든 부모에게서 ‘세상에서 믿을 것은 오직 노력뿐’이라는 언명을 받고 자랐다. 필자 역시 이러한 부류 중 한 사람이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고난 후 3년 만에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했지만 국가의 기틀이 채 세워지기도 전에 북한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서 부모와 형제가 갈라서고 금수강산이 초토화된 것은 차라리 재앙에 가까웠다. 이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5ㆍ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지만 경제적 성장을 이룬 대신 정치적 불안정은 지속되었다. 박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안보이데올로기를 통치수단으로 사용하다 보니 한계가 일찍 나타났다. 그래서 보릿고개는 일찍 넘겼지만 정통성시비에 시달리다 釜馬고개를 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였다. 집권기간이 길고 업적도 있다 보니 그림자가 길어 군 출신 대통령을 두 명이나 겪고 나서야 민주화를 학습한 대통령들이 나왔다.

중년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박대통령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고, 충무공탄신일에 각종 행사를 하는 것은 물론 현충사로 수학여행은 꼭 가야했으며 국군의 날과 유엔의 날 학교를 안가는 그런 일 등으로...

또한, 그들은 이 땅에서 경제성장의 신화가 현실화되는 것을 보며 각자의 성공신화를 실현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왔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능성의 실현과 ‘빨리빨리’가 가져다 준 풍요도 배웠지만 그 뒤에 숨겨진 대충 대충의 폐해와 일방성의 무모함도 겪었다. 하지만 재주 있는 사람들의 앞서나감을 부러워하기는 하면서도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가는 법을 배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선진국에 비해서 압축성장을 이루면서 후진국대열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근면성과 '빨리 빨리' 덕분이었다. 쓸 만한 인적ㆍ물적 자원이 별로 없고 정보와 기술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남보다 빨리 그리고 부지런하게 현실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리 빨리’를 통해서 이룩한 물질적 풍요가 우리의 삶을 진정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일까? 혹시 예전에는 갖고 있었던 소중하고 가치 있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상실한 것은 없을까?

정신없이 개발의 신화만을 쫒다보니 ‘우리’라는 공동체의식,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음, 노약자를 배려하는 여유 등을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 이러한 것들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행복의 중요한 조건들이다.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이것들을 되찾아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릴 적에는 단칸방에 살망정 우울할 때면 언제든 달려가 몸과 마음을 녹이던 어머니 품처럼 푸근했던 아랫목이 있었건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아랫목이 없다. 이웃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랫목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정담을 나누어야 한다.

정부도 이런 점에서 사회안전망도 되돌아보고 지역사회복지를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이라든가 복지반장제가 그 노력의 일환인데 이러한 활동들이 활성화되어 각 지역마다 정겨운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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