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시인·충주문인협회장>

박상옥 충주문인협회장

‘좀 만나자’ 란 친구들 연락을 받았을 때, 만나면 존댓말을 써야 하나 반말을 써야 하나 고민 했던 생각은 기우였다. 장어 굽는 연기 속에서 환영 박수와 함께 내 이름은 다짜고짜, 야! 너! 옥이! 짱구이마! 로 불리며, 이구동성 반갑다 외치는 통에 다 묻혀버렸다. 40여년 만에 만난 친구들, 친구들은 잘 풀리는 실뭉치처럼 나름의 엉킨 기억들을 술술 풀어놓았다.

같은 학교 한 교실이란 공간을 누렸음에도, 분명히 기억하는 것들은 제각이 달랐다. “옥아, 너와 정말 많이 다투던 송수 있잖아 갸가 꽤 성공했다는데, 외국에서 나랏일을 본다는데, 너네 둘이 매일 툭탁거리더니, 혹시 너한테 연락 안 갔어?” 친구들은 송수이야기를 나누며 송수의 성공을 정말 믿을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친구 송수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불현듯, 사랑이란 말을 못하고 우물거리던 입술이, 벼락처럼 떠올랐다. 자리를 옮겨 앉은 찻집에, 창을 타고 흐르는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덧 ‘사랑해’ 라는 말이 왠지 식상할 나이가 되었지만, 내 마음 속 나만이 알고 있는 사랑이, 목을 넘어가는 국화차처럼 모락모락 김을 올렸다. 나는 송수가 멋진 삶을 살아낼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학교소사인 송수에겐 백목련처럼 새하얀 누이가 있었다. 도시락을 가지고 교실 문을 기웃거리는,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한 누이였다. 담임이 바뀐 새봄에는 우리들 서로가 아무것도 몰랐다. 친구의 누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모습을 보면, 선생님은 갑자기 등을 곧게 세우고 헛기침을 하고, 얼굴이 붉어져 “송수야!” 하고 부르셨다. 그러다가 송수가 자리에 없는 것을 알고는 황당하다는 듯, “수업 끝!” 하고는 교무실로 후딱 가버리셨다. 한 교실 학생이 68명이나 되던 시절이었으니, 선생님이 큰 소리로 반 친구 이름을 부르는 게 일상이지만, 우리들은 그저 선생님이 송수와 그 누나를 유독 미워해서 그런다 생각했다. 나 역시 선생님을 화나게 하는 송수가 몹시 미웠으니까.
때때로 송수는 한 시간 끝나면 자리에 없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눈높이 아래로 보이는 운동장에서 아침부터 송수의 아버지가 리어커를 끌고 화단에 떼를 입히는 일을 했다. 송수는 수업을 않고 학교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반장에게 불려와, 엉덩이를 맞았다. “이 놈 엉덩이에 뿔이 솟았어. 이 뿔을 디밀어야 바르게 키가 크지” 선생님은 수시로 송수를 엎드려뻗쳐 시켰고, 송수는 하루가 멀다고 수업을 빠지고선, 이튿날 아무렇지도 않게 출석하여 엉덩이를 맞았다. 우리들 여린 계집아이들은 저러다 송수 엉덩이 다 문드러지겠다 싶었지만, 송수는 산으로 들로 내달리며 수업을 않고 꼭 매를 벌었다. 그러는 중에도 송수아버지는 다리를 절며 늘 우리들 시야에서 나뭇가지 치기를 했고, 화단에 풀을 뽑고, 학교울타리를 세우거나, 도랑을 쳤다. 입학 때부터 스스럼없이 인사를 주고받던, 송수아버지가 학교생활의 배경이 되는 것이 우리에겐 퍽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야외 자유 수업을 하다말고, 두고 온 책을 가지러 교실에 갔다가 선생님과 함께 있는 송수 누나를 봤다. 밀레의 저녁종처럼 고요히 마주선 두 사람을 보았다. 송수누나가 선생님께 무어라며 손수건을 건넸는데, 손수건을 받은 선생님은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며 돌아서더니 마룻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선의 오후 빛에 선생님의 눈물방울이 후두득 빛났다. 기름칠한 바닥에 흥건히 빛나는 눈물이 선생님만 같아서, 나는 가슴이 옥죄어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줄도 모르는 채, 잠시 후 선생님은 눈물을 쓱 흠치고 일어서서 송수누나를 덥석 안았다. 그 때 선생님이 복도유리창에 붙어있던 나를 보셨는지 모른다. 나는 도망쳤지만 내가 모르는 어떤 슬픔이 내 몸으로 들어왔는지, 꽤 오랜 동안 실어증이 걸린 듯 말을 잃었다.

송수누나가 시집을 갔다고 했다, 집안에 여자가 없어서였는지 송수의 입성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송수아버지의 목수건은 늘 찌들었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접을 듯, 절뚝였다. 그리고 송수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달라진 것인지 송수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은 더 이상 송수에게 매를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송수는 더 이상 결석하지 않았고, 급작스레 말 수가 적어지고 차분해졌다. 선생님이 일부러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도 기죽어 보였고, 어쩌다 어른처럼 시선을 멀리 던지며 간간히 한 숨을 내쉴 때면 왠지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고, 송수 입학금을 담임선생님이 마련해줬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들 예상과는 달리, 서울의 S대학에 진학했다는 풍문을 끝으로 나는 말썽쟁이 송수를 잊었다.

내 마음에 큰 산 같은 선생님이 벼랑처럼 무너지며 보여주던 눈물방울들, 창밖의 아빠를 향해 화난 듯 슬픈 눈빛을 보내던 커다란 눈동자, 동생에게 건네지 못한 도시락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빛바랜 블라우스의 나풀거림, 이렇듯 사랑으로 생긴 모든 눈물은 새벽이 슬어 놓은 이슬을 닮았을 것이다. 눈물은 일상의 햇살 함께 사라졌지만 결국은 살아가는 내내 촉촉한 생명이 되고 의미가 되는 것이니, 그 옛날 비밀이듯 입 꼭 다물던 나의 소녀, 기억이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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