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 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얼마 전 여주고등학교 인권담당 안전생활부장인 모 교사가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여학생 31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된 사건으로 교육계의 고개를 못 들게 하더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악스러운 교육현장사건이 또 발생하였다. 경남 진주시 한 초등학교 강모 여교사(32)가 6학년 제자 B군(12)과 수차례 성관계를 가져 미성년자 의제강간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A교사는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알게 된 6학년 B군에게 ‘사랑한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보내고, 자신의 반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압박감을 가진 B군은 A교사의 승용차에서 결국 지난 7월부터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교육계에 몸담았던 필자로서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끔 교육자의 길을 잘못 선택한 일부 비리교육자들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거론 되는 단어가 ‘교육자적 양심’이다.

이럴 때마다 교육자적양심이 사라져 가고 있다며 교육자들은 질타를 당한다. 이럴 때마다 가슴이 쓰려온다. 도대체 교육자적 양심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양심은 사물의 선악을 구별하여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바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끔 비양심적인 충동을 느끼는 건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육자까지 비양심적 행위를 한다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가 될 것이다. 비양심적인 사람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혼란스럽고 세상은 비리로 얼룩지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당장은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양심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지야 본인에게도 이익이 되고 밝은 사회건설에 일조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자적 양심이란 무엇인가? 무릇 교육자는 교육의 주체다.

옛말에 ‘훈장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자의 길은 어렵고 외롭고 의로운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시급히 교육자적 양심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그것은 바로 투철한 교육자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미래의 일꾼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는 일이다. 교육의 정의에 대하여 많은 동서고금의 교육학자들이 말한 공통분모를 추출해 본다면 교육이란 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에게 무엇인가 가치로운 것을 가르쳐주고, 성숙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는 상호작용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툭하면 극히 일부 교육자들의 황당한 사건에 휩싸여 교단이 불신 받고 교육 붕괴를 운운하며 온 세상의 질타와 손가락질에 교육자들은 기가 꺾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날로 교권이 벼랑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교육자들은 교육자의 힘은 순교자의 피보다도 값지고, 보람이 있다는 교육적 진리를 믿으며 현실의 어려운 교육풍토를 몸으로 부딪쳐 소화하며,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왜 그러면 사회는 우리 교육자에게만 그토록 특별히 철저한 양심을 아니 교육자적양심을 기대하며 강요하는 것일까? 사도헌장(師道憲章)에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 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라는 문구와 사도강령(師道綱領)에 ‘민주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나라의 주인답게 길러내는 교육은 가장 중대한 국가적 과업이다.’라는 문구가 그 질문에 답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교육자는 국가 발전과 민족 중흥의 선도자로서의 사명과 긍지를 지니고 교육을 통하여 국민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하여 개인의 자아실현과 국력의 신장, 그리고 민족의 번영에 열과 성을 다하여야한다. 또한 교육자의 품성과 언행이 학생의 성장 발달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국민윤리 확립의 관건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랑과 봉사, 정직과 성실, 청렴과 품위, 준법과 질서에 바탕을 둔 사도 확립에 우리 스스로 헌신하여야 한다.

그래서 교권을 확립하여야 한다. 교권은 교육자뿐만 아니라 학생. 학교. 사회와 더 나아가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교권이 실추되면 학교가 무너지고, 더불어 사회까지 무너지는 무서운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십계명에 ‘봉사를 머뭇거리지 말자. 교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로운 것은 학생을 위해 사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무명교사 예찬사의 한 구절처럼 ‘유명한 교육학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수많은 교육자들은 지금도 교육의 열정에 묵묵히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처음 발령을 받아 교단에 서던 그 설레는 초심으로 교육자적양심을 더 철저히 지키며, 항상 겸손하고, 봉사하며, 언제나 자애로운 교육자의 길을 가야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입으로만 떠드는 정치인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교육자의 올바른 가르침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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