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소설가) 지금 상추는 일 년 내내 먹는 사람들의 쌈 채소로 자리를 틀고 있다. 특히 돼지삼겹살과는 찰떡연분이라고 해서 꼭 붙어 다닌다. 그래서 영리를 목적으로 특수시설 갖추고 사시사철 재배해서 도시나 농촌으로 퍼뜨리고 있지만, 원래는 시골에서 농사꾼이 텃밭에서 길렀다. 가까이 있어야 그때그때 얼른 따다가 먹기가 편리하고 바쁜 일손을 줄일 수 있고 아녀자의 노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농가의 주음식이였던 보리밥에 얹힌 된장이나 고추장을 휩싸서 농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1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창 바쁜 봄부터 가을 문턱까지 길렀고, 이건 서늘한 기온을 좋아해서 봄 상추와 가을상추는 재배기간과 더불어 먹는 기간이 길지만 여름상추는 비교적 짧다. 이렇게 농민이 애용하는 상추여서 그걸 심는 상추밭은 깨끗해야 했고 깨끗이 취급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추밭에 개가 똥을 쌌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밭에 개똥을 거름으로 주는 일은 있지만 개가 직접 똥을 싸다니? 사람이 애지중지하며 먹는 상추를 심은 밭이 아닌가? 이건 대단히 불결한 일이다. 내 집에서 기르는 개이든 동네 개이든, 비록 누른 밥이나 밥찌꺼기 같은 사람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는 개이지만 이건 용서할 수 없다. 어떤 개이든 ‘상추밭에 똥 싼 개’ 라고 한번 낙인이 찍히면 그러한 일이 있을 적마다 그 개는 또 지목을 받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한번 잘못은 영원한 잘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한번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은, 나쁜 일이 드러날 적마다 의심을 받게 된다.’는 말이 됐다.

동네에 사건이 일어났다. 가뭄이 한창일 때다. 농작물이 타들어가서 두 집이 논에 물을 끌어올리려고 모터펌프(양수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걸 24시간 돌렸다. 낮에 두세 번 이 현장을 들러 작동여부를 살피고 어두워지면서부터 밤새껏은 그냥 둔 채 저 혼자 돌아가게 했다. 그런데 설치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나와 보니 양수기 모터가 안 보인다. 두 집이 다 없어졌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양수기 모터 도난사건은 이 동네선 처음이다. 그도 그렇지만 한창 가문 판에 야단이 아닐 수 없다. 두 집에선 곧바로 읍내파출소에 신고했고 이런 과정에서 온 동네에 이 소문이 쫙 퍼졌다. “웬 일이랴. 그 조서방집 쓰고 나서 우리가 좀 빌려 쓸려고 했더니 큰일 났네.” “누가 얌심맞게 이 판에 가져가 그래.” “이 판이니께 가져가지. 돈이 되잖여.” “그나저나 어떤 놈여 그래. 거 얼매나 받겄다구 그런 짓을 햐!” “도둑놈 물건은 확 후려친댜. 살 때나 비싸지 헐값이지 뭐.” “얼마 받지두 못할 거 이 보잘 것 없는 여까지 와서 가져가 그래. 수고비 교통비도 안 나올 틴디.” “그러니께 자네 말은, 범인은 먼 데 사람이 아니고 가까운 데 사람이라 이거여?” “그려, 내도 그런 생각을 했는디 그렇다면 혹?” “지금 여기 마침 연생이 아버지가 없어서 말이지만 내도 혹씨? 하고 있던 참인디.”

이들은 연생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고등학교 상급생이면 지각이 날만도 하련만 아직도 연생인 멧괴새끼 같아서 선행이 거칠다 그런데다 능청스럽고 수선스럽게 변덕을 자주 부리는 데다 능청스럽게 둘러대는 재주도 있어 학교에서나 동네서나 신임을 얻지 못해오는 터다. 그런 연생이가 작년에 전과자가 됐다. 작년가을 한창 벌초를 할 때 윗집의 예초기를 몰래 가져다 팔아먹은 일이 있다. 이로 해서 파출소에 불려갔지만 연소자인 학생이기도 하고 동네서 탄원을 해서 풀려났었다. 그러니 이번 사건도 십중팔구 연생이의 소행이 아니냐는 거다. “그 남 다가는 대학엘 오죽하면 연생이만 가지 못하고 억지로 제 아버지한테 매여서 생일만 하고 있으니 딴 맘먹기 십상이지 뭐 안 그려?” “그 놈 전력으로 보아서 그 놈임에 틀림없어 그 모다 논 거 다 알구 그 가격까지 꿰뚫고 있었을 거라구.” “그리구 말여, 그 사건 후 통 보이지 않잖여.” “듣구 보니 그러네. 그럼 어디 한번 연생이 아버지 불러다 슬쩍 물어보자구. 어디 가고 안보이나 말여.”

그래서 연생이 아버질 불러 왔다. 그리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기 말여, 연생이가 요새 통 안 보이데 이 가문 판에 논밭일이 바쁠 텐디 말여” “어, 갸? 인천서 개 고모부가 왔길래 사람 만들어 보라구 딸려 보냈어. 그 놈 요새 많이 달라졌어.” “그려? 잘 됐네. 인제 철이 드나보네.” “연생이 걱정들 해줘서 고마우이!” 이런 걸 ‘상추밭에 똥 싼 개’ 취급을 했던 것이다. 그 사흘 후, 파출소에서 그 모터 상습범인이 강원도에서 붙잡혔다는 전갈이 왔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