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오늘이 ‘백로(白露)’다.
요즘에 절기가 무슨 큰 소용이 될까마는 가끔은 절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와 삶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백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부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까지 가을절기의 중간쯤에 해당하는데, 기온이 내려가서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는 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여름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를 생각하면 신통방통 잘 들어맞는다.
포도가 제철을 맞는 때라 ‘백로’는 ‘맏며느리가 통째로 입안에 쏘옥 넣어 맛보는 그해 첫 포도’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절기로서 ‘백로’는 벼이삭이 잘 ‘팼는지‘ 어떤지 살펴보고 한 해 농사를 가늠해 보는 시기다.
아직 패지 않은 벼이삭을 ’미발(未發)‘이라 하여 “음력7월 백로에 ‘미발’이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선선한 날씨가 일찍 와서 곡식이 여물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보통은 백로가 음력8월인데 올해는 윤년이라 음력7월에 ‘백로’가 닿았다.

’미발(未發)‘이 어디 곡식뿐일까. 살다보면 깨치지 못한 생각 때문에 힘들어 지는 일이 한 두 가지랴. 세상사 욕심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자연이든 인생이든 그저 있는 자리에서 순리대로 여물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백로‘ 절기가 주는 교훈이다.

지난 주 동네 교회에서 가수 ‘노사연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올해 회갑을 맞은 그녀가 지금껏 공인의 삶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갈등과 여유롭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요즘의 심정을 진솔한 어조로 들려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4.8Kg의 우량아로 태어나,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젊은 시절이, 한 때는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60세가 되도록 적지 않은 세월을 오직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 그리고 남편(이무송)을 만날 수 있게 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돼 감사하다는 고백이다.
결혼 후에도 순탄치 않았던 부부생활과 청력이 약해져서 보청기를 껴야만 하는 상황 등으로 가수로서의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던 시기에,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바램>이라는 곡으로 재기할 수 있었다는 신앙 간증과 찬양노래가 이어졌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사이 ‘꽃(여성)’으로서의 삶은 다소 부족했지만, 노래 <만남>에서 <바램>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가수로서 ‘열매’를 맺어가는 지금의 삶이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발’은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알곡’을 위한 과정이었음을 증명하듯 온 몸으로 노래를 부르며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너른 들판에 잘 ‘팬’ 벼이삭처럼 보기 좋았다.

9월이 주는 감상 탓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백로-흰 이슬’에 대한 여물지 않은 생각들이 포도송이처럼 열린다.
‘이슬’하면 ‘초로(草露)인생’이 먼저 떠오른다. 풀잎에 맺히는 이슬처럼 인생의 덧없음으로 받아들여도 좋지만 기왕이면 ‘짧은 인생, 이슬처럼 반짝이게 살라’는 뜻으로 새기고 싶다.
“긴 밤 지새우고......”로 시작하는 <아침이슬>은 금지곡 지정에서부터 해금(解禁)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는 민주화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곡이 됐다.
아침나절 잠깐 비치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참된 가치를 지닐 때 <아침이슬>처럼 긴 생명력을 가지는 게 아닐까.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 일부다. 
어느 새 까마득히 잊혀 진, ‘풀섶 이슬’에 바짓가랑이 적시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런저런 ‘미발(未發)’의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걸 보면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정작 7월 백로인 올해, 벼는 잘 팼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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