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유영선 상임이사) 한 지식인이 세상을 떠났다. 아니 시인이자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전직 교수가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목숨을 끊었다.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우울한 시를 발표한지 1년 만에.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그가 떠나서일까, 그의 시가 더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그는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것으로 결별했지만, 그가 사는 동안 세상은 그를 끌어안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 그는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마 교수의 사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전해졌지만, 그의 죽음은 어쩌면 위선에 찬 우리 사회 엄숙주의와 인식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볼 수 있다.
실력있는 젊은 학자로 잘 나가던 마 교수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출간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도화선이 됐다. <즐거운 사라>는 부모가 이민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여성이 성에 눈을 뜨면서 성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 간다는 줄거리로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왔다. 그러나 마 교수가 의도한 소설적 완성에 앞서, 소설 내용 중 여대생이 자신의 대학 교수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문제가 돼 보수층과 대학 교수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마 교수는 나빠진 사회 여론에 의해 법정까지 가게 된다. 검찰은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나, 사회적인 통념에 어긋나고 특히 청소년 독자들에게 모방심을 부추겨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마 교수를 전격 구속했다. 
마 교수는 이 소설 발표 이전부터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 인간 본성을 파헤치는 ‘야한’ 작품을 쓰고자 했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이 성에너지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에도 이유가 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우리 사회 이중성에 대한 고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 교수는 <줄거운 사라>가 문제가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다. 겉으론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한 번 시비를 걸어 본 것이다. 성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90년대초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엄숙주의를 강요한 사회였지만, 가려진 이면에는 성매매 성상납 등이 성행하는 이중적인 성문화 사회였다. 당시 마 교수는 그 욕망의 가식을 깨고 성에 대한 담론을 터놓고 말할 수 있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는 거부감을 주던 그의 작품이나 생각들이 이제와 생각해보면 얼마나 앞선 의식들이었던가 이해가 된다.
그가 만들어낸 ‘사라’는 남성 우월주의의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요구를 타파하고자 나섰던 앞선 여성이었다. 다만 자기정체성을 성의 본질을 찾는 여성으로 그려 일부 거부감을 갖게 한 점은 있지만, 그녀의 삶이 타자로서의 여성이 아닌,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소설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소설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아직 유보적이다. 그러나 공개적인 성담론으로 우리사회의 엄숙주의를 깨면서 온몸으로 사회와 맞부딪친 것은 그에 대한 추억과 함께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 마광수의 ‘별것도 아닌 인생이’ 중에서
글쓰는 것, 상상하는 것,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던 순수한 이였다는, ‘에로티시즘 문학’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학계와 문단에서 배척받았지만 용기있는 이였다는 마광수.
그의 시처럼 참 별것도 아닌 인생을 힘들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게 아무래도 우리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그래도 떠나기보단 남아서 세상과 싸웠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이 아침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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