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 조명희 선생.

(동양일보 김재옥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중이던 지난 7일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포석 조명희(1894∼1938)의 문학비를 전격적으로 참배한 이후 조명희 선생에 대한 평가가 재조명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극동연방대학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행사를 마친 뒤 블라디보스토크 악사코브스카야 박물관 앞 공원에 있는 조명희 문학비에 들러 참배했다. 문 대통령의 조명희 문학비 참배로 귀국 비행기 출발이 20여분 지연됐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조명희’를 언급하긴 했지만, 이날의 참배는 당초 계획에도 없던 깜짝 방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진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민중문학 작가인 조명희는 1928년 소련으로 망명했다.
근대 이후 외국에서 활동하다 작고한 문인들의 문학비 건립을 통해 우리 문화와 정신의 공간을 넓히고자 2004년에 결성된 '작가모임'은 2006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조명희의 문학비를 세웠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선구자이자 태두(泰斗)로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포석은 한국 최초의 창작 희곡 ‘김영일의 사’를 썼고, 그 희곡으로 한국 최초의 순회공연을 벌였으며, 한국 최초의 창작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발간했다. 선생은 시인, 소설가, 희곡인, 아동문학가, 평론가, 교육자, 언론인, 번역가 등 다양한 부문에서 한국 근·현대문학사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일제의 민족압살 통치에 문학이라는 무기를 통해 문인으로서 가장 당당하게 맞섰던 선생은 더 이상 조선에서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1928년 8월 21일 소련으로 망명해 새로운 문학과 삶을 개척해 나아간다. 특히 소련으로 망명했던 기간 동안 선생은 고려인(카레스키야)의 구심점이 됐다. 선생은 언론인과 교육자로서 민족 계몽과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으나, 1938년 당시 스탈린 정권의 음모에 의해 일제 스파이로 누명을 쓴채 총살형을 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러한 업적과 활동상으로 조명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스리스크, 하바로프스크 등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들로부터 항일투쟁 영웅 59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러시아를 함께 방문했던 김정숙 여사는 6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 강변에 있는 '헤이그 특사' 보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참배했다.
김 여사는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 이현원씨, 외증손녀 이남의씨와 함께 유허비에 헌화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선생의 넋을 기렸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박람회에 특사로 파견됐다가 일본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러시아에 머물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중 1917년 숨을 거뒀다.
이상설 선생은 '광복되지 않은 고국에 돌아갈 수는 없으니 화장한 후 재는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2001년 10월 이상설 선생의 재를 뿌린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유허비를 세웠다.
이에 앞서 김 여사는 유허비 인근 고려인 문화센터를 방문해 고려인 역사관과 아리랑 전시실 등을 둘러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명희 선생을, 김정숙 여사가 이상설 선생을 차례로 참배하면서 선생의 고향인 진천 주민들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신모(35·진천군 광혜원면)씨는 “진천 출신인 조명희 선생과 이상설 선생의 업적을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이 새삼 평가해 줘 진천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진천이 낳은 자랑스러운 영웅인 포석과 보재 선생을 기리는 일에 마음을 보태 주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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