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홍 <청주시 경제투자실장>

나는 어릴 적 숫자를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산수가 싫었고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수학이 싫었다. 노력해서 시험을 봐도 점수가 안 나와서 싫었고 그러다보니 나는 이공계보다는 인문계를 가야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런데 수학점수가 모자라니 원하는 대학에도 갈 수가 없었다. 어렵게 대학 1학년을 들어가니 1년 교양과정으로 수학이 또 있는 것이었다. 2학년으로 올라가서 행정학 전공과목을 시작하니 비로소 나는 수학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 2학년이 되어 나도 등용의 꿈을 안고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3학년 때 1차를 통과하고 4학년 때 2차를 보려 하는 데 해마다 250명씩 뽑던 합격생을 반으로 줄인단다. 그 해부터 유신 사무관을 100명씩 충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50등 안에 못 들었던 나는 회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평생의 꿈인 공무원 시험을 다시 도전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9급 시험을 보려니 시험과목 중에 수학이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수학과목이 없는 7급 시험에 합격해서 오늘까지 이르렀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배치된 부서에서 서무를 맡아 회계나 예산업무를 배워서 하기는 했지만 이건 수학이 아니고 산수이고 그래서 숫자로 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직장이고 직업이라는 이유가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 이걸 배워야하고 잘해야 공무원으로서 성공할 거 아닌가하는 생각은 숫자에 대한 새로운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가 40대 후반에 기획예산과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부터 나는 숫자의 홍수 속에 파묻히게 된다. 청주시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기획을 할 때에도 시정 전 분야에 걸친 각종 데이터와 통계자료 위에서 작업을 해야 했고, 예산은 말 그대로 숫자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그 속에서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겉이나 속으로 모두 딱 맞아 떨어져야 하는 조립작업이다. 그리고 나서 숫자의 매력을 점점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 우리 시 예산이 9400억원이었는데 1조원를 넘어가면 어떨까하는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단기간에 넘기는 방법은 국비를 많이 따오는 방법밖에 없다. 그 뒤에 1조가 넘어가자 통합청주시가 되면서 예산은 단숨에 1조 5000억이 되었고 그 다음엔 2조를 넘어가보자는 공감대가 모아졌다. 국비확보를 위한 시장님과 우리 모두의 노력은 올해 초 당초예산을 처음으로 2조 예산을 넘기게 되었다. 결산을 해보면 2조7000억이 넘고 있고 청주권 기업들의 경제상황이 남달리 좋은 신호들을 유지하고 있어서 3조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 일 수 있다. 숫자가 통합청주의 발전과정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조라는 것은 사실 개인의 시각에서 보면 소유할 수 없는 천문학적 단위의 숫자이다

1억이 한두 개도 아닌 일만 개가 모인 것이 1조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년도 예산에서 처음으로 국비확보 1조 돌파라는 성과도 있었지만, 1조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더 나아가 마력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어도 매력이 있다. 사업 당 수 십억씩 들어가는 사업을 넘어서서 요즘 우리 시 예산서를 들여다보면 수백억 사업들이 즐비하다. 1조가 가져다주는 재정능력이고 해결능력이다. 종전에는 꿈으로만 가졌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진 숫자인 것이다.

어린 시절 숫자를 싫어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지금은 숫자를 분석하기도 하고 그래프로 그려 보기도 하며 그 속에 파묻혀 사는 것 같다. 숫자가 가장 잘 표현하는 부분은 현재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지만, 한 나라 또는 지역, 기업 심지어 한 개인의 과거를 보여주다가 미래의 흥망성쇠를 예고하기도 한다. 화폐까지도 최근에는 현금과 구별되어 구좌에서만 숫자로 확인되는 인쇄화폐(printing money)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빅 데이터나 기상예보, 인공위성, 인공지능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 4차 산업혁명도 모두 숫자와 그 계산위에서 진행된다고 보면 가히 숫자의 세상이고 매력을 넘어서 절대 권력을 가지지 않을까 공연히 걱정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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