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신영배

(동양일보) 더운 여름이 지난 요즘 피부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들판은 결실을 준비하는 벼 나락과 귀뚜라미들의 대화로 적당히 소란스러워 정겹다.
곧 가을이 익어가고 농부들은 추수의 풍요로움을 느끼며 자연에 감사할 것이다.
이른 아침 출근길! 거미줄에 꿰어져 보석처럼 빛나는 이슬을 바라보다 문득 유년시절 가을을 생각한다.
궁핍했던 그때는 추수 후 볏짚을 논에 쌓아두고 일부는 초가지붕으로, 일부는 불 소시개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고 밤이면 촌부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새끼 꼬기와 가마니를 짜 농가 소득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중 ‘새끼’에 대한 추억이 새롭다.
새끼는 볏짚을 추려 꼬아 만든 당시의 최고의 포장 재료이면서, 눈밭에서 참새를 잡던 덥치기의 동력(動力)장치에 활용되고 낱장으로 사오던 연탄의 운반용 손잡이로 쓰여 지는가 하면 안방 벽에 달아맨 메주와 함께 고향의 냄새로 발효되기도 하고 귀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로 신성한 분야 까지 아주 다양하게 그 역할을 수행했었다.
그런데 출근하다 말고 왜 갑자기 새끼 타령인가?
유년의 회상 속에, 그 새끼가 공복(公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실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와 함께 떠올랐기 때문인데 간단하게 소개해 보면 이렇다.
시골농가의 주인이 계약 기간이 끝나는 두 일꾼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자네들 고생 많았네,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가급적이면 아주 가늘면서 질기게 그리고 길게 새끼를 꼬아주게”
한 일꾼은 주인의 부탁을 받들어 정성으로 가늘고 길게 새끼를 꼬기 시작했는데 한 일꾼은 마지막까지 일을 시킨다고 불평하며 건성으로 일을 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엽전이 가득 든 궤를 내 놓으며 “자네들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그 새끼에 여기의 엽전을 마음껏 꿰어가게 자네들 덕분에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네”하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성실히 일한 일꾼은 가는 새끼로 엽전을 가득 챙길 수 있었지만 건성으로 굵은 새끼를 꼰 일꾼은 엽전이 새끼에 꿰어지지 않아 엽전을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언젠가 접했던 이야기가 맑고 신선한 출근길에 어린 시절의 가을과 함께 투영되며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충심으로 받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성실하게 소임을 다하라는, 그리고 초심을 잊지 말라는 회초리로 다가왔다.
석양이 하늘을 가장 붉게 물들인다 했던가!
경찰에 입문한 30여년의 세월을 뒤돌아보며 다시금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고 마지막까지 정성으로 물들여 보자는 상념에 젖다가 갑자기 멋쩍은 생각에 작은 헛기침으로 출근길을 재촉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