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동양essay
한 장의 흑백사진 같은김춘수 사진작가

만남은 인연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필연이라는 것도 있다.

인연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과 인생의 문양이 결정된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사진 동아리 활동은 내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사진계의 기라성 같은 오고의 선생님을 만나 지도를 받으며,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눈을 얻었고, 필름 수천 통을 산과 들에 묻다 보니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 되었는데 무슨 벼슬이라도 얻은 양 한동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먹고 살기 빠듯한 유년시절에 모든 것이 부족하여 욕구불만으로 점철된 성장기와 길든 가난의 굴레 속에 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나에게 예술이라는 단어는 어느 특정인들만의 전유물이고 사치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만의 리그에 내가 끼어들 수 있다는 사실에 우쭐함이 더했던 것 같다.

사진작가라는 벼슬(?) 덕분에 잠재되었던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했는지 괴산에 예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느티울영상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사진작가협회 괴산지부를 창립했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인들과 문인협회, 그리고 음악인들을 설득하여 충북에서 여덟 번째로 괴산예총을 창립,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예술의 생활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우리 지역에 맞는 새로운 예술 아이템을 찾고자 신문과 인터넷을 뒤지던 중 한국 마사회에서 시행하는 농어촌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 지원하는 공모사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오케스트라 구성에 필요한 각종 악기 구입비와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인데, “바로 이것이다” 하는 직감과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절실함이 있었으나 전국에 10곳만 선발한다고 하니 경쟁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총의 운명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마사회의 문을 두드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사업 공모에 최종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때마침 나에게 색소폰을 가르쳐 주고 있던 이원희 교수님을 예술감독으로 초빙하여 단원 모집 공고에 이어 선발 오디션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40명 선발 예정에 200여 명의 지원자들이 학부모들과 참석하여 북새통을 이루었음은 이 사업이 우리 지역에 얼마나 목마르고 필요한 사업인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선발된 단원들에게 본인의 희망과 적성에 맞는 악기를 지급하였는데, 대부분의 단원들이 악기를 처음 접하는지라 한 달 정도의 기초 교육을 실시한 후 음악계의 거장이신 금난새 지휘자님을 모시고 대망의 창단식을 갖기에 이른다.

창단식에서 한 달 동안 연습하고 익힌 ‘퐁당퐁당’을 비롯한 동요 몇 곡을 연주했는데 그 감미롭던 하모니는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

창단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어서인지 참석해주신 마사회 이진배 단장님께서 어버이 합창단 지원 사업도 있으니 지원해 보라는 귀띔을 받았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돼가는 것 같았는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사랑하는 아내가 암 진단을 덜컥 받고 말았다.

이 날이 있기까지 든든한 후원자요, 생활의 원동력인 아내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예술 활동을 한답시고 밖으로만 나돌며 오지랖을 떨었던 나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던 아내였는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내의 치료를 위해 서울의 모 대학 병원을 오가면서도 예총 일 역시 등한시할 수 없었기에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열심히 뛰었는데 평생 잊지 못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이어 마사회에 응모한 어버이 합창단도 선발되어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아내에게 자랑 삼아 전했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 귀찮으니 당신이나 좋아하세요”하는 게 아닌가. 순간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좋아했고 기뻐했던 아내였기에 무안하고 낯설게만 보였다. 병든 아내의 처지를 망각하고 나 자신의 존재만을 우선시하다 보니 정작 아내에게 섭섭함을 안겨주고 만 것이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달래 주기엔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하늘로 갔다. 회한의 눈물이 시도 때도 없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가슴에 남겨진 빛바랜 흑백사진은 말이 없다.

동양일보  dynews@dynews.co.kr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양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동양 포토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