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2004년 8월28일 저녁 전남 곡성 봉조리 농촌체험마을. ‘호남과의 화해’를 앞세워 이 곳에서 의원연찬회를 연 당시 한나라당(지금은 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은 여의도극단 창단공연을 했다. 정치풍자극 ‘환생경제’의 주인공은 노가리(주호영 분·현 바른정당 의원)다. 노가리는 허구한 날 술 퍼 마시고 마누라 두들겨 패고 가재도구 때려 부수는, 그래서 집안 말아 먹은 무능한 가장이다.

노가리는 아내 근애(이혜훈 분·바른정당 의원)와 민생(심재철 분·자유한국당 의원), 경제 두 아들을 뒀다. 그런데 둘째 아들 경제가 제대로 먹지 못해 ‘후천성영양결핍신경근육마비’로 죽자 아버지 노가리는 장례식장에서 소주병을 꿰 차고 술 주정만 해댄다. 반면 근애는 이사를 반대하며 경제 회생을 바라면서 시종일관 아들의 죽음에 슬피 운다.

여기서 노가리는 노무현 대통령, 근애는 박근혜 대표를 상징하는 말이 직설화법으로 나온다.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대통령 못해 먹겠다” 등등이 그렇다.

연극 한 장면의 대사를 옮겨 본다.
번영회장(송영선 분) : 안녕하세요.
노가리 : 자식 새끼 죽었는데 안녕은 무슨 안녕!
부녀회장(박순자 분) : 인사를 해도 욕하는 뭐 이런 개×놈이 다 있어
노가리 : 이쯤 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
부녀회장 : 사내로 태어났으면 불×값을 해야지, 육××놈. 죽일 놈 같으니라고
노가리 : 나도 다 사정이 있어요, 경제 죽고 나니 가슴이 싸릿싸릿하오. 근데 내 탓이 아니고 순전히 집터가 안 좋아서 그런거 아니요. 명당이라면 집안 꼴이 이런가. 그런데 마누라는 (이사를) 기를 쓰고 반대하니 부창부수라고 하는데 복장 터져요.
(장면 바뀌어 친구들이 근애를 위로하며)
번영회장 : 근애야 이혼해.
부녀회장 : 그래, 이혼하고 위자료로 그거나 떼달라 그래. 그 거시기
번영회장 : 그놈은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이야.

누군가로 뻔히 특정되는 이 연극은 현직 대통령을 조롱하고 성적으로 희롱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임을 삼척동자가 다 안다. 정말이지 소름 돋는 연극이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어찌 이런 것을 연극이라고 만들어 무대에 올릴 수 있었는지 그 후한무치에 말문이 막힌다. 박근혜 당시 대표도 ‘프로를 방불케 한 연극’이라고 호평했단다.

그런데 만약 당시의 야당 의원들이 현직인 박정희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망신 줬다면 공화당이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극을 보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기는 커녕 무슨 발 뒤꿈치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무시 그 자체다.

13년이나 지난 연극을 이제와서 새삼 왜 들추냐고 의아해 할 수 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그를 대하는데 넘어서는 안될 레드라인이 있다. 얼마 전 충북도의회 자유한국당 김학철(47·충주) 의원이 “문재인 씨한테 하라고 하세요”라고 질러댔다. ‘레밍’ 발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그가 지난 4일 도의회 윤리특위징계위원회에 입장하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물난리 속 외유와 레밍 막말로 비난은 누가 자초해놓고 대한민국 대통령한테 ‘문재인 씨’라니, 양심과 양식, 상식이 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개 막말 도의원의 입줄에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무게와 가치가 없단 말인가.

우리가 흔히 성 또는 이름 뒤에 붙여 쓰는 씨(氏)는 그 사람을 대접해 가리키거나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상사한테 면전에 대고 ○○○씨라고 한다면 큰 결례다. 말에 위아래가 분명한 한국사회에서 심하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만큼 상대에 따라 신중하게 가려 써야 하는 게 ‘씨’다.

이같은 말을 문 대통령한테 써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피해보려는 정치적 계산을 했다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앞서 그는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간 것에 대해 탄핵감이라고 주장,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 했다. 상습적이다.

그는 또 도의회 징계(출석정지 30일, 공개사과) 이행의 하나로 지난 11일 가진 공개사과 자리에서 또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아 어디까지가 제정신인지 헷갈리게 했다. 마치 자신을 늑대 무리인 도민을 이끄는 ‘늑대 우두머리’로 표현, 파문을 부른 것이다.
그가 막말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끌고 보수지지세력을 일정부분 껴 안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의 앞엔 9개월여 남은 내년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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