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근 뉴스와 신문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건들이 있다. 바로 학교 ‘집단폭력’ 사건이다. 학교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다양한 갈등과 대립들이 있게 마련이기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툼들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요즈음 연일 보도 되고 있는 내용들은 과거의 대단했던 패싸움과도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의식도 없고, 잘못한 줄도 모르며, 범죄를 즐기는 양상이다. 이들의 행동은 과거의 요선도 대상 아이들과 확연히 다르다.

첫 째, 폭력의 정도가 모자이크처리를 하지 않고서는 방송에도 나갈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것은 물론 방법 또한 비겁하다. 집단끼리의 패싸움이나, 일대일의 주먹다짐이 아닌, 다수의 인원이 한 사람을 몇 시간 동안 집중 공격하여 생명의 위협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마치 동일 조직의 소행마냥 계속해서 전국 각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것도 이제 폭력 앞에는 성별의 차이도 무색해진 듯 여학생들의 폭력이 집중 조명되고 있다. 둘 째, 직접적 폭력은 물론, 협박에 시달리면서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세상의 삶을 영원히 포기하는 아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과거 성적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학 진학 실패의 절망감이 가장 문제에서 지금은 ‘왕따’, ‘폭행’ 등, 또래관계의 갈등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해 일어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잔인하고 혹독하게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기도 하고, 가해자 집단 내에서 소외되는 순간 다시 피해자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두 경우 모두 어른들의 보호와 관리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벌어진 사건이기에 모두를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우리의 아들딸들이 이러한 위험에 이르렀으며, 그럴 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35년이 훌쩍 넘은 필자의 교육 경력까지는 필요 없다. 그저 학교 현장에 1~2년만 몸담은 교사라면 모두 동의 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 있다. 이러한 대형 사건들의 주인공들은 갑작스럽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 아이들은 분명 ‘전초전’ 즉 초기 증상들이 있었다. 일단, 출발은 별일 아닌 듯 보인다. 교복을 줄여 입고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꾸부정한 자세, 어쩌면 팔짱을 끼고 앉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러다가 삐딱하고 반항적인 눈빛으로 교사의 ‘간’을 보기도 한다. 점점 별다른 훈육이 없다 싶으면, 교사의 질문에 반항적 말투로 일관하거나 교실 바닥에 침을 뱉는 등 또래들 앞에서 일명 ‘센 척’을 해 본다. 이쯤에서는 교사라면 누구나 심각한 윤리적 갈등에 빠진다. 문제 삼으면 문제고, 그냥 넘어가면 조용할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 사건으로 터지기까지에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아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제발 내가 담임을 맡은 기간 동안 이 정도에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괜스레 여기서 건드렸다가는 수업시간에 학부형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장 선생님 직통전화를 통해 “한참 사춘기 아이들이 충분이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일에 그 선생은 왜 유난을 떠느냐, 그럴 시간에 수업 준비나 더 하라”는 등의 항의나 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교육청 홈페이지에 내 이름이나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내용의 글이라도 실리는 날에는 시말서를 쓰는 등 인사경력에 심각한 오점이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웃어넘기며 마치 아이들의 반항적인 행동에도 사랑으로 감싸는 너그러운 교사의 모습을 택해버리면 그 뿐이다. 이미 이 정도로 교사들의 권위는 나락에 떨어져 있다.

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제부터다. 학생은 이렇게 꼬리를 내리며 피하는 교사의 모습을 모를 리 없다. 일명 교사와의 ‘맞짱’에서 승리 한 학생이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제 더 이상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출결 불량은 물론, 이미 교내의 모든 규율은 자신의 발아래에 걸려 있을 뿐이다. 또한 또래의 친구들로부터 받는 영웅적 추앙이라는 “이른 권력”에 중독되었으니,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더 강인하고 잔혹한 힘의 과시를 보이기 위해서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급속도로 “범죄” 수준까지 질주를 해버리는 것이다.

총과 수갑을 빼앗긴 경찰은 더 이상 범죄자를 막아낼 수 없다. 총을 빼앗긴 군인은 총알받이로도 가치가 없다. 필자의 교사의 권위회복에 대한 소신은 “하늘같은 교사를 존경하자”라는 말이 아니다. 모든 권위가 바닥에 떨어져 버린 교권으로는 제자가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을 보고도 막아낼 방법이 없다. 거기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은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가장 약하고 착하디착한 바로 나의 아들딸이라는 것이 미치도록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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