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안철수 전 의원이 국민의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 호남 홀대론이 급부상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략적 계산이긴 하나 아무튼 역대 정부에서 홀대를 받아 왔다고 여기는 호남사람들을 자극하기엔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을 것이다.

처가가 전남 여수여서 ‘호남사위’라는 안 대표에게 호남은 정치적 출발점이자 고비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곳이다.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차린 국민의당 간판을 달고 지난 20대 총선에서 녹색돌풍의 주역으로 등극했다. 당시 총선에서 광주 8석을 싹쓸이 하는 등 호남 28석중 23석을 휩쓸어 원내 3당 자리를 꿰찼고 대선가도에 양탄자를 깔게 해 준 곳이 바로 호남이다.

그러나 총선 1년여만에 치러진 ‘장미대선’에서 그가 받은 성적표는 초라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절반도 안되는 표를 얻어 정치적 고향에서 참패했다. 대선후에는 그의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졌고 국민의당 지지율 역시 한자릿수로 떨어져 회생 불능에 빠졌다.

당 대표로 복귀한 안 대표로서는 자신과 당의 정치생명이 걸린 호남판을 뒤집을 ‘한 건’이 필요했다. 그게 ‘호남 홀대론’이다.

국민의당은 정부의 2018년 예산이 지난달 말 발표된 직후부터 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정부를 향해 연일 집중포화했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삭감하면서 역대 정권의 차별로 낙후됐던 광주·전남이 더욱 소외됐다며 ‘호남찬밥’, ‘토사구팽’을 들먹였다.

안 대표는 지난 7일 광주송정역에서 ‘호남 SOC 예산 삭감’ 현장 브리핑을 갖고 “대선이 끝나고 넉달만에 호남고속철은 다시 서러운 시간을 맞고 있다“고 성토했다. 전남도가 신청한 호남고속철 2단계 관련 3000억원의 예산중 154억원만 반영됐다며 “정말 해도 너무한다”고 호남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무시로 일관하던 민주당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던지 ‘얄팍한 정치공세’라며 맞받았다. “안 대표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시비를 건다고 존재감이 드러나겠느냐“면서 국민의당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내년도 정부 SOC 예산이 22.9% 줄었으나 호남지역 SOC 예산은 16% 삭감됐다며 정부와 호남민들을 이간질하는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역공했다.

그렇다면 호남 홀대론은 논리적으로 맞나. SOC 예산이 줄어드니 각 지역에서 저마다 홀대론을 들고 나오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안 대표는 영남지역 지자체에는 신청하지도 않은 SOC 예산이 배정됐다며 케케묵은 영·호남 감정 자극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대구·경북 언론들이 ‘대구 국비사업 비상’, ‘역대 최고 TK예산 대폭 칼질’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충남연구원이 분석한 2008~2016년도 지역발전특별회계에서 지난해 총 10조781억원중 경북은 1조7688억원, 전남 1조 6093억원, 경남 1조1692억원, 경기 1조820억원, 전북 9318억원이다. 충북은 고작 6527억원이다. 2015년 역시 경북 1조5924억원, 전남 1조5443억원, 경남 1조1543억원, 전북 9492억원인 반면 충북은 6106억원에 불과하다. 이같은 예산 흐름은 2008년부터 내내 같다.

이를 놓고 본다면 홀대론 중심엔 단연 충북이 있다. 일례로 SOC 예산 홀대로 중부고속도로(호법~남이) 확장이 17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74.5㎞를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하는 이 사업은 내년 정부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2001년 처음 추진돼 2003년 예비타당성조사, 2006년 기본실시설계, 2007년 도로구역연장, 2008년 타당성재조사(B/C 1.261)까지 완료됐으나 제2경부고속도로(현 서울~세종고속도로)에 밀려 피해를 보고 있다. 도로구역 변경 결정고시까지 돼 착공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여지껏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호남 홀대론을 들고 나온 국민의당은 지지율 면에서 큰 덕을 보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9월 2주(12~14일) 호남 여론조사결과 민주당 71%, 민주당 8%로 9월 첫 주 7%와 큰 차이가 없다. 호남 홀대론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의 전 주 지지율 79%에서 8% 빠진 것에 위안해야 할 판이다. 되레 진보·호남(전북 고창) 인사인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에 국민의당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솔직히 말해 호남의 정치력에 충북을 견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되나가나 홀대론을 들먹여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다. 중부고속도로 확장 건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는 뿌리깊은 충북 홀대 앞에서 홀대론 운운할 지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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