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형만 한 아우가 없다고 한다. 또 장남이나 장손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고 한다. 이건, 맏이는 그 아래 동생들보다 낫다는 말이다. 반면에 ‘무녀리’라는 말은 ‘문 열이’가 어원으로 즉 ‘엄마 뱃속의 문을 제일 처음에 열은 사람’ 이라는 말로서 곧 맏이를 말하는데, 그 뜻은 속된 말로 ‘언행이 좀 모자라서 못난 사람’ 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맏이는 그 아래 동생들보다 모자란 사람이라는 거다. 어느 것이 진짜로 맞는 것인지는 몰라도 둘 다 써오고 있다. 이것 말고도 다른 것들도 이런 양면성을 가진 말들이 더러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구미에 맞게 어떤 때는 이렇게 쓰고 또 어떤 때는 저렇게 쓰고들 있다. 그래서 여기 동네사람들도 돌담집 형제를 평가하는 데 있어 생각이 제각각이다. 한편에선, 맏이는 집안을 지키기 위해 도회지에 현혹되지 않고 시골집에 눌러 사니 그 집 맏이답다 하고, 또 한편에선, 형 보아 자신이 희생해서 시골집 떠나 도회지로 나간 거라고 그만한 아우도 없다고 칭찬이다.

여하튼 도회지로 나가 시골버스기사로 있는 그 동생이 왔다. 돌아가신 선친의 기제 일을 마침해서다. 하여 동네어른들에게 인사차 마을회관 경로당엘 들렀다. “아이고, 어김없이 왔구만!” “여전들 하시군요. 단체로 절 받으십시오.” “오십 된 사람한테 절 받자니 어째 쑥스럽구만.” “요샌 어딜 뛰나?” “청주서 바로 옆 지역 읍내까지 뛰고 있습니다.” “힘들지? 아무리 교대로 운전대를 잡는다 해두 밤늦게까지 뛸려면 고생이 클껴. 안그려?” “그렇지요 뭐, 직장이 그런 걸요 뭐.” “시골사람들 상대하자면 답답한 일두 많구 속 터지는 일두 많을껴.”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셔요?” “당장 내두 그런 걸 뭐. 묻고 또 묻고 어거지 쓰고….” “그래서 말씀인데 한 가지 웃지도 못할 일 들려드릴까요.” 그가 웃음을 머금으며 이야기 한다.

시골노인들이며 젊은이들이며 학생들을 잔뜩 태우고 운전대를 열심히 잡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워, 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한 노인네의 목소리였다. 술 취한 노인의 헛소리로 여기고 그냥 달렸다. 한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한 200여 미터쯤 가다가 차를 세웠다. 그랬더니 그 노인네가 비틀비틀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너 왜 스라는데 안 서!” 하면서 주먹을 들고 때리는 시늉을 하는 거였다. “스라는 부저도 안 누르셨잖아요?” “부저? 이 소만두 못한 놈. ‘워, 워’가 스라는 소리 아녀. 소두 알어듣는데 사람이 못 알어들어! 이 소만두 못한 놈.” 그때 그는 퍼뜩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평생을 소와 함께 살아 ‘워, 워’는 귀에 못이 박힌 소리다. “빨랑 빠꾸해서 내려주지 못햐!” 그는 아버지 생각해 못 이기는 척 허허허 웃으며 도로 노인이 원하는 자리까지 가서 내려드렸다. “그 노인네 분대꾼이구먼, 분대꾼여.” “그러게 말여. 남을 괴롭게 해서 분란을 일이키는 꾼이구먼 꾼.” “이 사람 같은 좋은 기사 만나 더 이상 분란은 없었으니 망정이지….”

“또 하나 들려드릴까요?” 그러더니 그는 입가에 가벼운 웃음기를 띄운다. 또 노인네의 이야기다. 시골길을 운전하는데 중간쯤 좌석에서 ‘서, 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서는 정류장이 아니어서 그냥 얼마 안 남은 정류장까지 가서 섰다. 그랬는데 차가 서자마자 비틀비틀 다가온 노인이 그의 얼굴에 종 주먹을 들이대며, “뭐 이런 운전수가 있어. 왜 스라는데 그냥 가?” 하는 게 아닌가. “거긴 스는 데가 아녜요 할아버지.” “손님이 스라면 서야 될 꺼 아냐 스는 데가 따로 있어?” “정류장 해놨잖어요 정류장에만 스는 거잖어요.” “나 그런 거 몰러. 여태껏 아무 데서나 손 흔들면 섰구, 내려달라면 아무 데서나 내려줬잖여!” “정류장에서만 타고 내리게 된지 오래 됐는데요?” “그런 법 언제 어느 날짜에 정했어 말해봐 빨리!” 이때 한 아낙의, “할아버지 뻐쓰 오래간만에 타셨나보다. 벌써 오래 됐어요 그런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이번엔 그 아낙을 향해, “그러게 그게 흔법 멧조에 언제부터 실려있냐구 당신은 알어?”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거였다. “헌법요…?” 그 아낙이 기막혀 하며 말을 못하자 버스 안이 한바탕 와르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 할아버지 즈이 동네 분인데요 약주를 좀 드셨습니다. 이해하셔유.” 하며 한 중년이 할아버지의 팔짱을 덥석 끼고 내리는 바람에 일단락 됐다. “여기두 분대꾼 또 하나 있구먼!” “하여튼 분대질해서 사람 속을 확 긁어 놓는 노인네들 많어.” 그리곤 좌중을 둘러본다. “난 아녀, 난 아녀.” “나두 아녀, 나두 아녀.” “자네 속 많이 썩겠네. 그래두 어떡하나 자네가 우리 늙은이들 이해하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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